왜 기초의학을 "연구"해야 하는가(2)

2026. 4. 23. 15:21MD : Doctor/Medical Student

지난글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3년 정도 임상의학을 공부하면서,
기초의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기초의학은 재미와 흥미 말고도
그 자체가 가진 도전성으로 임상의학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순기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임상의학의 빠른 발전을 가져다주었죠.

그러나 안전함, 보수적인 치료방법을 고수하는 임상의학에서 혁신적인
즉, 무에서 유를 만들고 새로운 외연을 넓히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도전이기 때문이지요.

이 도전을 통해 cutting edge technology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기초의학에서 많이 이루어지지요.

따라서 기초의학은 지금 이 시점에는 그 의미와 파장을 모를 수 있는 연구들인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당장 사람에게 쓰이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이들 분위기가 이제까지의 교육과 연구 패러다임을 좌우했던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의학 연구는 더욱이 쓰일 곳이 없어 보입니다.

그 결과, 이제 매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기초의학을 하는 친구들은
전국을 통틀어 매해 의사 합격 인원 3000명 중에 1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요새는 Physician-Scientist라는 중개의학 연구자들이 전문의를 마치고 오긴 하지만,
여전히 이들 인원은 극소수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부분과 분위기를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의대생 개인에게도 그러하지만 의대라는 시스템에도 비난할 생각은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꼭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의대는 남들이 가진 직업보다 조금 더 나아 보이는 직업인
“의사”를 배출하는 전문직업 양성소가 되었을 뿐입니다
.

실제로 의대를 졸업하는 의대생 대부분은 의사가 됩니다.

고등학교 때 꿈꾸던 그런 안정적인 삶,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모범생스러운 삶을
거의 고등학생 시절 상상한 그대로 이루어지는 몇 안 되는 안정적인 곳이 바로 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대는 그저 그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이죠.

개개인의 의대생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의대에 왔기 때문에 모두에게 잘못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뜻하게 끓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이 행복하고 안정적인 시간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큰 틀에서 외연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Fast follower에서 First mover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어딜 가도 소위 말하는 CNS라 불리는 Cell, Nature, Science와 같은 탑 저널을 원하고,
실제로 이걸 해내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고. 외연을 넓히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연 이것이 쉽게 가능할까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거나, 정말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발견해서
이들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결해 내는 것은 질문부터 출발이 달라야 합니다.

혹은 그런 질문을 본인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남들이 가진 아주 좋은 질문을 남들보다 아주 빨리 풀어내야만 합니다.

이 두 가지 방법만이 현재 아무도 모르는 분야를 cutting 해 내어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고,
그 외에는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방법 중에 우리는 그나마 두 번째 방법은 그럭저럭 해 왔고,
오늘날 우리나라가 발전한 모습이 그 성적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두 번째 방법보다 첫 번째 방법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이 사실지요.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좋은 질문은 남들이 잘 안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Cell지의 leading edge를 읽어보아도, 제가 먼저 풀 수 있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만약, 좋은 리뷰 논문에서 제가 풀 수 있을 만한 문제를 누군가가 적어 놓았다면,
그건 이미 그 사람이 풀었거나, 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제가 그런 연구를 한다면, 그건 이미 태생부터 Follower이고,
아무리 빨라 봐야 Fast follower일 수밖에 없습니다.

yes24, 질문력 제공

그렇기 때문에,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교육은 임상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왜냐하면, 임상의학에서는 교육의 정답 자체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치료를 해내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첫 번째인 임상의학에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나의 도전은 대부분 돌팔이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해도, 이미 누군가가 그 질문에 대하여, 정형화된 틀로
“프로토콜”이라는 이름으로 NEJM이나 Lancet에 이렇게 치료하면 된다고
선전포고해 두었기 때문에, 나의 새로운 도전은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쳐도
그 공고한 “프로토콜”이라는 성을 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좋은 임상가는 최신 의료 지식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환자를 잘 치료하는 사람이고, 다양한 최신 프로토콜 지식을 무장하고
잘 활용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 좋은 질문은 엉뚱한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답이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설에 따른 결과가 Yes든 No든 어느 방향으로 튈 수 있고,
그 결과가 또 다른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는 질문이 좋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좋은 질문에서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풀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만 현실적으로 “좋은” 질문이라는 점입니다.

예컨대 “시간을 가로질러 미래 혹은 과거로 갈 수 없을까”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는 좋은 질문일 수는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 낼
도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좋은” 질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기초의학 분야가 “의학”의 영역에서만큼은
그런 좋은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의예과나 본과 1학년 수업에서는 밀려드는 지식의 양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대학원에서만큼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의학 외연에 있는 좋은 연구자들을
의과대학에서 많이 모셔와서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의과대학 본연의 “의사 양성”이라는 교육적 측면도 분명히 중요하기에,
(단순히 “의사”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 “의대생”이라는 “피교육자” 신분으로
“의학”을 접해본 사람이 일정 부분 교육을 맡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의과대학은 의대생 교육만을 신경 쓰지 않고, 교원들에게 연구를 더 많이 요구합니다.

임상 의사들에게 치료만을 요구하지 않고 연구를 더 많이 요구하는 이상,
기초의학에 대한 본질적인 환기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표현을 “환기”라고 했지만, 더 엄밀하게는 학교 차원에서 연구력 향상을 위한
좋은 도구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초 의학에 대한 관점을 단순한 교육에 머무르지 말고,
의학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교육 분야”로 기초의학을 바라보면, 교원 1인에게 주어지는 과중한 수업 부담과
지금과 같은 MD 선호 주의는 필연적이고, 더 이상의 발전은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외연을 넓히고, 기초의학을 의학 외연을 넓힐 개척지로 바라보면
골드러시를 향해 달려갈 무수히 많은 세계적인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의과대학이라는 틀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대에는 대한민국에서 최소한 고등학교 시절에서만큼은
최선의 노력을 수행한 검증된 친구들인 의대생들이 있습니다.

이들 의대생이 진료를 보는 평범한 의사가 되는 것은 “그들의 고등학교 시절 꿈”이고,
“세계적인 연구자로서 새로운 의학 지식을 만드는 꿈”을 가지게 만드는 것은
현재의 의과대학이 해야 할 일 입니다.

그리고, 이들 의대생 친구들은 충분히 좋은 연구자가 될 자질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다시한번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왜 기초의학을 '연구' 해야하는가"

 

좋은 의사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서 몇 십 년 동안 이들을 안전하게 만들어서
“보수적인” 치료 방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기초 의학이 만들어 내는 연구 저변을 넓혀야만 합니다.


바로 처음부터 좁게 파서는 결코 땅을 깊게 팔 수 없습니다.

넓은 영역부터 시작해서 깊숙이 파였지만 더 깊게 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학은 태생적으로 보수적이기에, 실패할 것들을 감안해서 최대한 넓게,
최대한 다양하게 기초의학 연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우리의 미래 세대가 과거에 우리가 만든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실패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초 의학은 느림보 거북이 같아 보이고, 이에 대한 투자는 때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 보이지요.

하지만, 밑 빠진 독에서조차도 빠지는 물보다 더 많은 물을 부으면 독에 물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이러한 이치를 들어 그저 성과 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하여 후순위로 미뤄두는 것이 아닌
기초의학을 더 열심히 연구하여, 좋은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임상의학의 혁신적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더 이상 누구를 따라가는 만년 이인자가 아닌 이 분야의 선구주자가 되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