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3. 10:03ㆍ진로에 대한 이야기
신진 교수 시절의 바쁨
교육을 시작하면서 겪는 시간적, 심리적 부담감
신진 시절의 제일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모든 환경을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통상적으로 신진을 대략 5년 정도라고 보는데요.
처음 부임할 때 적은 나이에 임용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이가 들어서 임용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임용된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더 경험이 있지만,
대부분 교원으로 시작하면 많은 일들이 거의 처음 해보는 일들입니다.
예컨대, 기본적으로는 ‘수업 준비’가 있겠죠.
물론 학교마다 수업 시간을 줄이는 경우도 있고 늘리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통상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 학기에 대략 9학점 정도 수업을 합니다.
9학점은 통상적으로 세 과목인데,
1년 차일 때는 운이 좋다면 자기가 잘하는 과목이 두 과목 정도,
운이 없다면 세 과목 모두 새로운 교과서를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학교마다 첫 학기에는 강의를 3학점이나 6학점 정도로
줄여주거나 아예 신진 교수는 교육에 있어서 수업을 없애는 학교들도 존재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경향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9학점, 특히 매주 수업이 있는 경우 9학점을 준비하고 강의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그 분야의 전문가인 교수라 할지라도 큰 부담이 됩니다.
여전히 '연구'를 잘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본인이 배웠던 시절과 가르치는 시절 사이에 길게는 15년 짧게는 10년 정도의
간극이 있다는 것을 고민해 봤을 때,
새로운 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학기에는,
부여받은 학점에 따라서 강의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부담이 생기게 됩니다.

운이 좋다면 강의 준비를 할 때,
선임 교수님들이 ppt를 전달해 주거나 요지를 파악해서 노하우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독립적으로 본인이 ppt를 만들어서 수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3시간 분량의 ppt를 준비한다면 짧게는 50장에서 100장이고 길게는 120장에서 150장 정도 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준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학기에는 교육의 부담이 생각보다 큽니다.
2학기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과목으로 9학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담은 여전합니다.
다만, 1학기에 수업 준비 방법이나 ppt 제작, 강의 스타일들을 이미 익혔고,
학생들의 피드백을 듣는다거나 그 외 당황스러운 여러 가지 사건들의 경험으로 인해
2학기 때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더불어, 아는 교수님들이 늘어나면서 각 과목에 대한 노하우나 강의 자료를 얻어서
조금 더 쉽게 강의가 가능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교육 과목을 준비하고 가르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로소 세 번째 학기, 즉 2년 차쯤이 돼서야 수업에 대한 부담이 조금 덜어지게 됩니다.
이전의 수업 내용들이 반복되면서 점차 익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1년 정도 주기를 거치면서 조금 더 업그레이드됩니다.
그러나 2년 차부터는 팀 티칭(team teaching)을 하거나,
어떤 학교에 따라서는 신진 교수님들께
다른 대학원 과목 강의를 맡기기 때문에 교육의 부담이 여전합니다.
그 외에도, 간혹 선임 교수의 이직이나 연수 등으로 부재 시, 다양한 이유 등으로
수업을 더 맡게 되면 일과 속에 수업이 늘어나고 길어져서 부담이 높아지기도 하지요.
통상적으로 9학점 정도 가르칠 때 준비 시간은 매주 짧아도 9시간,
길게는 20시간 이상 걸립니다.
이것이 신진 교수가 바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교육자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도 역할을 지속하는 것
대부분의 신진 교수님들은 연구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그 연구를 지속하기를 원하고
그에 맞는 환경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신진 교육자로서의 커리어가 있고 연구자로서 커리어도 존재합니다.
통상적으로 신진 교수님들은 직전에 있었던 포닥 지도교수와의
연구 프로젝트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시차에 따라서 밤이나 새벽에 미팅이나 연구가 진행되기도 하고,
학생들을 구하기 전에는 낮에 본인이 직접 실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직전 지도 교수와의 프로젝트에서 본인이 해야 하는 부분을 찾아내고,
연구 공간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특히 이 부분은 지도 교수와의 "공존"을 추구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예컨대, 2년 재계약에 논문 2편을 내는 것은 새로운 세팅이나 주제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연구비로 연구 장비를 구매할 때도 처음 겪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본인이 자주 썼던 현미경이라도 예산에 맞추어 견적을 받거나,
예산이 부족하여 대체품을 찾거나 등을 하면서 어떤 현미경을 사야 하는지
단순히 결정하는 것조차 하루 종일을 투자해도 해결되지 않는 "업무"가 됩니다.
특히 기기마다 어떤 옵션이 있는지 하나하나 찾아보고,
예산에 맞추어 구성하다 보면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 부분은 잠시 후 연구 환경에서 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연구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겪는 예상외 리소스 소모와 독립적 연구 환경 구축
신진 교수는 이제 "독립적인 연구자"입니다.
독립적인 연구자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독립적인 PI (President Identity)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본인이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결정하는 자리에 있다는 점입니다.
즉, 모든 최종 결정을 본인이 내려야만 합니다.
포스트잇 하나 사는 것부터 논문의 최종 컨펌도
이제 본인이 최종 결정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연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내부적으로는 학생들과 포닥, 외부적으로는 공동 연구자와 함께 하게 됩니다.
또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비를 포함한
다양한 리소스가 필요합니다.
이런 모든 환경을 본인이 "최종 결정자"로서 스스로가 구축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학생 및 연구원, 포닥 리크루팅
연구를 진행하려면, 누군가가 필요하겠죠? 본인 스스로 수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를 잘 수행하고자 한다면 좋은 학생 혹은 좋은 연구원을 뽑아야 합니다.
사실, 학생과 연구원을 recruiting 하는 데도 상당한 에너지가 듭니다.
운이 좋다면 처음부터 좋은 학생이 들어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교수가 적극적으로 학생을 recruiting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조 교수가 좋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도,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 교수에 대한 선배들의 충분한 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랩에 join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왜 우리 방에 오면 좋은지,
오면 어떠한 프로젝트가 있는지 여러 번 설득을 해야 합니다.
운이 좋다면 처음부터 좋은 학생이 설득되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최소 5명에서 최대 10명까지 면접을 통해서 학생들을 만나고 설득해야 됩니다.
반대로 지원하는 학생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교수가 직접 모집 공고를 내거나
주변 교수님들께 연락을 드리는 등 인력을 구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공통적으로 신진 시기 때는 모든 것을 처음 겪는 데서 오는 피로감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약간의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면서
적응에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는 학생들의 트레이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의 포닥 시절의 예로, 예전 실험실에서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던 실험이
세 달이 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행정 처리에서 제가 생각하지 못한 일이 터져서 몇 달이 걸린다거나 하는 일들
역시 비일비재합니다.
그때쯤 비로소 ‘내가 예전에 있었던 지도 교수님 방이, 연구 환경이 아주 잘 구성된 랩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진 시절에는 연구비와 인력이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교수 자신이 무리를 해서, 경험을 터득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교수의 연구 관리 스타일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micro control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완전히 위임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기존에는 micro control 하는 사람이었지만 시간이 전혀 없어지면서
자의 반 또는 타의 반으로 위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연구 환경 조성
연구 환경이라는 측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연구를 하려면 재료비나 인건비 등 다양한 연구비가 필요합니다.
초창기에 받을 수 있는 연구비는 대부분 학교에서 주는 스타트업 밖에 없기 때문에,
연구력을 높이고 연구비 종류를 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요새(2025년 현재)는 좋은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신진 연구자들에 대한 환경이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특히, 신진 연구자 연구 환경 구축 사업은 무려 5억까지 지원이 되고,
우수 신진 과제 역시 연간 연구비가 중견급인 2억이기 때문에,
신진도 독립적으로 본인의 랩을 구성할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신진인 시절에는 이런 부분이 없어서,
제발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 환경을 독립적으로
구축해 달라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신문 기사 press 참고)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70323010008287
http://www.medworld.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441
https://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134
https://www.medigatenews.com/news/12416270
예를 들어, 재료 구입 업체 컨택, 연구비 신청, 기기 세팅, 출장이나 학회를 갈 때
어떤 방법으로 가야 하는지,
필요하지만 직접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은 누구를 통해서 문의하면 좋을지,
내 연구 분야의 장점을 살려 누구와 콜라보를 해서 연구비를 따야 할지 등의
질문이 연구 환경에 속합니다.
연구 인력을 뽑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잘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 이 시점에서 홈페이지를 만듭니다.
홈페이지도 대충 만들면 학생들이 잘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소한 클릭 버튼 하나를 이쁘게 만드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듭니다.
벤치마크를 위해 여러 홈페이지를 보면서 스타일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정보를 구성해야 하는 것에도 시간이 많이 듭니다.
많은 신진 교수가 생각보다 초반에 홈페이지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웹디자인과 Html 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을 알아보는 것 자체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연구 환경은 생각보다 방대하고, 학교마다 모든 것에서 다 다르기 때문에,
한번 해봤다고 해서 또 잘할 수 있는 것에 성질의 일인 것 같습니다.
신청 절차가 다르고, IRB도 다르고,
담당자의 스타일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기기들도 다릅니다.
참고로, 저의 경우에는 두 군데의 학교를 경험헸습니다.
첫 학교에서 익숙하게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완전한 구축을 하는데,
최소 1년의 시간이 필요하였고 여전히 새로운 것을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진 교수의 경우에는 이런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림을 인지하고,
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교내 행정업무와 학회활동에 바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편: 신진 교수는 왜 바쁜가? (1)
3편: 신진 교수는 왜 바쁜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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