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9. 10:08ㆍ진로에 대한 이야기
지난번 ‘신진 교수 시절의 바쁨’에 대한 글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는
신진에서 중견으로 넘어가는 교수가 왜 바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큰 틀에서 신진 교수는 초보이면서 새롭게 배워야 일들이 많아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본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기본적으로 당연하다 싶은 것들에 대해서도
본인이 직접 처리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확인을 하는 경향이 있고,
'의심'이 아니더라도 조금 더 철두철미하게 정보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험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신진 시절의 정보에 대해 공부할 때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정보를 습득하는 스타일이,
연구나 다른 부분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생소함을 주로 느끼는 신진에서, 이제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중견 교수로 넘어갈 때는
신진 교수와는 또 다른 양상의 바쁨이 생깁니다.
신진에서 익숙해진 일들, 예컨대 학교, 학회, 학생 관련 일이 규모가 확장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과업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수업과 교육과 관련된 업무들
수업의 경우 3~4년 차쯤 되면 새로운 수업이 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익숙해집니다.
어떤 난이도로 질문이 오는지, 수업에서 나타나는 황당한 사건들과 성적, 시험, 평가 등을
많이 경험해 봤기 때문에, 수업 자체는 시간적으로 부담일 수는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더 이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학교 정치에 휘말려서 수업을 다 떠맡게 되는 경우도 있고,
신임 교수에게 수업을 주지 않던 분위기가 중견이 되면서 수업을 더 주는 학교들도 존재합니다.
또는 누군가의 이직이나 정년 퇴임으로 갑작스럽게 수업을 맡게 되는 경우들도 생깁니다.
그런 경우에는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맡지만,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전보다는 수월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업은 크게 골치 아픈 일이 많지 않습니다.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도 없습니다.
학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예전에는 수업 시간당 3~4배 또는 5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신진에서 중견으로 트랜지션 되는 시점에서는
학점에 비례해 대략 2배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물론 새로운 수업을 맡았을 때는 수업 자료 제작이나 공부,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부족한 부분 보충 등에 한해서만 준비하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업에 로딩이 줄게 됩니다.
자료 역시 기존 자료를 받아낼 수 있는 네트워크나 시스템이 있기에 어느 정도 부담이 덜하게 됩니다.
그러나 연구 중심 대학을 포함해 대부분 대학의 경우, 교육 인증, 의대생-학부생-대학원생 교육 등
교육자로서 요구되는 많은 업무들이 존재합니다.
물론 공대나 자연대에서도 학생들 관련 프로그램 및 특정 교육 사업 등으로 인해
과업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대학원이나 연구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링크 사업이나 대학원 BK사업에서 하나둘씩 교수님의 초청을 받기 시작합니다.
함께 프로그램을 짜는 새로운 기획 또는 어떤 프로그램에 대한 데이터 수집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즉, 티는 잘 나지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들을 본격적으로 맡게 됩니다."
예컨대, 교육 제도에 맞추어서 교육 과정을 개발(develop) 해야 하는 일들도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시니어 교수님들의 보조나 간사, 부장 혹은 참여 위원의 역할로 해야 되는 일들입니다.
이 경우는 그전에 2~3년 동안 어떻게 일을 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기는 합니다.
예를 들면 소극적으로 신진 교수 시절을 보낸 사람은 상대적으로 이런 요청이 없을 것이고,
반대로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 사람일수록
이러한 요청을 많이 받게 됩니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공동의 행정업무, 프로젝트 과제 관련 업무들
당장 시간도 없는데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얼핏 보면 마이너스처럼 보입니다.
특히 교육이나 학교 행정은 연구에 비해서 더욱더 티가 나지 않고 대충 하는 경향이 많고,
소모적인 경우가 많아서, 더 마이너스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런 부분에 많이 관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업무들이 꼭 마이너스로만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연구만 열심히 할 거야. 평생 동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 거야.
연구만 잘하면 모든 게 다 극복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인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연구를 잘하게 되면 갑작스럽게 보직에 대한 요청들도 생기고,
그런 시니어 시점에서 내 연구하겠다고 특정 보직이나 행정 업무를 거부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물론 너무 많이 오는 것들은 거부해야겠지만,
이 부분을 조금씩이라도 살피면서 학교 내에 자기의 위치를 어느 정도 만들면
보이지 않는 장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 내에 다양한 위원회라든지 예산을 집행할 때 좀 더 일을 한 사람,
봉사를 한 사람에게 (리워드(reward)라고 표현하기에는 조심스럽습니다만)
좀 더 도움이 되게 행정적인 부분을 맡기거나 예산을 집행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당위적인 논리도 중요하겠지만, 어디까지나 학교의 집행 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네트워크 효과와 얼마큼 이 부분이 설득력 있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에
봉사의 점수가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첨언이지만, 사람들은 다 압니다.
특히 동료 교수들은 더 잘 알고, 잘 안 까먹는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20년 전 짜장면 사준 선배들도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인 즉, 교수들은 ‘이 일이 이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충분히 봉사하고 있구나. 이 사람이 학교를 위해 희생하고 있구나’라는 것을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제가 경험한 곳은 그러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들이 생기는 것은
인간 사회의 '당연한 현상' 같습니다.
단순하게 리워드만 생각하면서 본인의 연구만을 위해 인위적으로 행동한 사람이 많은 리턴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교수 사회도 인간 사회이기 때문에 그러한 희생과 봉사에 대해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부채의식을 갖습니다.
그래서 친목, 새로운 기회 아니면 직접적인 예산, 누군가의 소개 등
어떤 형태로든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본인의 업무가 아니고 도움이 안 된다 생각하더라도,
항상 최선을 다해서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분명히 좋은 일들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누군가는 해야 되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들에 대한 요구가 이제 점점
늘어납니다. 통상적으로 연구를 우선으로 하는 교수님들인 경우에는 교육 사업 또는 인력에 대한 프로그램을 짜거나
교육 과정을 개발하거나 하는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희생을 하는 것 같다, 쓸데없는 일을 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시게 되고요.
반대로 연구와 같은 사업의 기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상대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더 열심히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봤을 때 저도 아직 그 위치까지는 아닙니다만
다른 다수의 시니어 교수님들이 이야기하시길,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에너지를 쓰면
어떤 형태든 리워드가 온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한테 맡겨진 바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물론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한 태도들이 하나하나씩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다른 업무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걸 하기가 힘들다 그러면 'No'를 하면 됩니다.
사실 'No'를 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No'를 하는 것이 오히려 일을 어영부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겠지요.
'No'를 하게 되었을 때, 제가 느낀 하나의 단점은 그 다음번에 기회가 잘 안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No'를 할 때는 최대한 신중하게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연구 기획과 연구실 운영에 따른 바쁨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2편: 신진에서 중견으로 (2)
3편: 신진에서 중견으로 (3)
'진로에 대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진교수는 왜 바쁜가? (3) (0) | 2025.09.05 |
---|---|
신진교수는 왜 바쁜가? (2) (0) | 2025.09.03 |
신진교수는 왜 바쁜가? (1) (3) | 2025.09.01 |
임상 안하는 "딴짓하는"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들 (0) | 2020.05.07 |
(글소개) 의사. 인턴의 삶. 그리고 얻을 수 있는 것들. (0) | 2020.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