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호흡기 증후군 (MERS) 환자가 급증하면서, 전염병에 대한 국가 방역체계에 대한 큰 불안감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MERS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고,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이쪽을 전공하지는 않아서 수박 겉핥기식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아서 좀 걱정이 됩니다만, 일단 썰을 풀어는 보죠. 

reference는 언제나 유용한 위키피디아와 2013년에 publish된 nature review immunology article입니다.


1.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 MERS-CoV,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 virus1

MERS-CoV particles as seen by negative stain electron microscopy. Virions contain characteristic club-like projections emanating from the viral membrane. (wikipedia http://goo.gl/B3G9J)


MERS는 corona virus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 종류입니다. 2012년에 처음으로 발견된 이 바이러스는 중동 (사우디 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아랍에미레이트, 쿠웨이트, 카타르), 동남아시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미국, 영국,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출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뭐, virology는 일반적인 corona virus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여요. SARS와는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corona virus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사우디 SARS"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놈들은 따른 respiratory virus들과는 다르게 nonciliated bronchial epithelial cell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SARS-CoV와 비슷하게 exopeptidase, 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2을 이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는 dipeptidyl peptidase 4 (DPP4)를 functional receptor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정확한 virology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요. 그도 그럴께, 바이러스라는 넘들이 워낙 변화무쌍하게 막 evolution하는 놈들인데다 이처럼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인 경우에는 BL3에서 완전 무장하고 찔끔 찔끔 연구할 수 밖에 없어서 열심히 해도 진도를 빼기가 쉽지 않을꺼에요. 그리고 이게 인수공통전염병인지라 숙주에서 숙주로 옮겨가면서 바이러스 입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계속 새로운 감염 기전을 개발해왔을지라 연구가 정말 쉽지 않을껍니다. 

요래 요래 완전무장하고 BL3에서 연구할껩니다. 이런 연구 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고위험성 병원체 연구를 해보고 싶은데, 저는 쫄보라 못할 것 같아요. (근데 여긴 미군 연구소인건 함정. 사진 EDGEWOOD chemical biological center, US army RDECOM lab) 

이 MERS-CoV는 박쥐 (bat)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간숙주로는 낙타(camel)가 추정되고 있습니다. 중간숙주로 추정되는 낙타에 대한 검사를 실행한 결과 혈중에서 MERS-CoV에 대한 항체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nasal swab에 대한 realtime RT-PCR결과 MERS-CoV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기본적으로는 박쥐독감-낙타독감-사람에게서 MERS로 이어지는거죠. 여기에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궁금점은 어떻게 낙타에서 사람으로 감염이 되었는지인데, 우유, 고기, 타액, 소변, 공기감염 등을 의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낙타의 오줌같은 경우는 특히나 중동에서는 여러가지 질병에 대한 약으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러한 중간숙주를 거쳐 오는 질환에 대해서는 인수공통감염증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알아봅시다. 


2. 중동호흡기질환증후군, 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2

이러한 MERS-CoV에 감염된 사람의 증상은 SARS (sever acute respiratory syndrome)과 유사합니다. 독감과 유사한 고열 (flu-like fever), 근육통 및 전신피로감 (myalgia), 기면 (lethalgy), 기침 (cough), 목의 통증 (sore throat) 등이죠 뭐. 그럳다가 더 심해지면 숨이 차오르는 증상 (shortness of breath)인데, 이건 굉장히 비특이적인 일반적 바이러스성 폐렴과 비슷한 증상을 보입니다. 아니, 그도 그럴께 MERS도 바이러스성 호흡기 감염이니 말이지요. 이러하니 당연히도 흉부 엑스레이상에서도 바이러스성 폐렴, SARS와 크게 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 WHO에 따른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열의 호흡기 질환으로 임상적, 방사선검사, 조직학적 검사에서 pulmonary parenchymal disease (폐렴, SARS)가 의심되는 경우,

①  MERS-CoV 검사가 용이하지 않거나 적절하지 못한 검체결과상 negative가 나오더라도 + MERS-CoV가 확진된 케이스와 역학적인 관계가 의심되는 경우 

② MERS-CoV 검사가 아리까리 하더라도 (positive로 나오기는 했지만 confirm은 안 된 경우) + 중동 거주자던지 MERS-CoV virus가 확인된 지역을 발병 14일 이전 여행한 경우

③ MERS-CoV 검사가 아리까리 하더라도 (positive로 나오기는 했지만 confirm은 안 된 경우) + 역학적으로 MERS-CoV 케이스와 연관된 경우

흉부 엑스레이에서는 바이러스성 폐렴, ARDS (acute respiratory distress syndrome)과 유사하고, CT에서는 interstitial infiltrate가 발견된다고 합니다. Lab finding에서는 leukopenia (간혹 lymphopenia)가 나타나지만, 음, 이건 확실한 진단기준이 아직 없다는 것의 반증이겠죠. 그나마 BAL (bronchoalveolar lavage), 객담 (sputum), tracheal aspirate에 대한 PCR (upE; targets elements upstream of E gene, ORF1b; targets open reading frame 1, RdRp; targets RNA-dependent RAS polymerase, N gene; targets nucleocapsid gene) 에서 viral load의 확인데 이 중 MERS에 specific한 건 N gene에 대한건가 보더군요. 

병태생리적으로 MERS-CoV가 endogenous interferon (IFN) 생성을 antagnoize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현재 in vitro 레벨에서는 IFN-α, IFN-𝝀이 바이러스의 번식을 막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실험실 레벨이기 때문에 증상에 대한 대증치료 말고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인 듯 싶어요. 일단 확진 환자와 의심 환자에 대한 격리와 대증치료 말고는 딱히 치료법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게 SARS하고 비교해보았을 때, 전염성은 약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치사율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높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방역당국의 기민한 대처가 요구됩니다. (40%의 치사율은 중동지역,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에서의 치사율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의료기술이 더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이보다는 좀 낮을 것으로 예측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치사율이 높은 무서운 바이러스임에는 틀림 없어요.)

자, 그럼 MERS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사실 저도 아는게 이것밖에는 읎음), 최근 대두되고 있는 다른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해 역시 수박 겉핥기로 알아보십시다.


3. 인수공통감염병, Zoonosis3

에이즈 (HIV), 에볼라, SARS, 조류독감, 그리고 지금 이야기한 MERS. 이 놈들의 공통점은 바로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아 물론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프루엔자 (스페인독감, 아시안독감, 홍콩독감), 웨스트나일바이러스 등등 전세계적을 공포로 몰아넣은 질환의 대부분은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바이러스 이외에도 박테리아 (탄저, 렙토스피라), 삐꾸단백질 (Prison disease, 광우병), 기생충 (Echinococcosis) 등등 굉장히 다양한 놈들이 다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분류됩니다. 근데 이 놈들은 바이러스에 비해서 전염력이 상대적으로 약한지라 풍토병처럼 생각되고 있지요 (Prison disease와 탄저는 예외). 따라서, 본 글에서는 바이러스에 의한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해서 살짝 알아보겠습니다. 

이 인수공통감염병은 동물에서 생겨난 감염성질환이 인간에게 전염된 경우를 가르킵니다. 자, 다음의 그림을 한 번 보시죠. 

Bean AGD, Baker ML, Stewart CR, Cowled C, Deffrasnes C, Wang LF, Lowenthal JW. Studying immunity to zoonotic diseases in the natural host - keeping it real. Nat Rev Immunol 2013; 13:851–61. 

처음 자연숙주인 경우에 바이러스는 큰 증상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감기 정도의 약한 증상이지요. 그런데, 이게 엉뚱하게도 다른 동물로 전염되게 되면서 증상이 조금 심각해집니다. 위에서 중간숙주인 닭, 말, 돼지, 낙타 등으로 전염되게 되면서 중등도~심각한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spillover host인 인간에게 감염이 되면서 치사율 높은 심각한 질환이 되는거지요. 조류독감, SARS, MERS 등이 다 이런 인수공통감염병에 속하는 질환들입니다. 얘네들이 종이 다른 숙주간을 왔다 갔다 하는데에 크게 작용하는 놈들이 바로 벌레입니다. 모기, 벼룩 등등을 통해 자연숙주에서 spillover host인 인간까지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물론 호흡기 질환등의 경우에는 기침, 체액, 혈액 등이나 식수 등을 통해 전달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자연숙주에서는 가벼운 감기같던 놈들이 왜 인간에게 와서는 이렇게 무서운 질환이 되는가? 

결론은 잘 모릅니다. 다만, 현재 연구들을 통해서 알려진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인간의 면역체계가 진화하게 되면서 동물과 유사하게 남아있는 부분 (highly conserved molecules and pathways)이 문제 (예를 들어 TLR 같은 놈들)

② 바이러스와 숙주가 같이 진화하면서 티격태격 살아온게 문제 (예를 들어 박쥐와 코로나바이러스)

①에 대해서는 바이러스의 특징때문인 듯 싶습니다. 바이러스가 동물숙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가지 수용체들을 이용하고 사용하는데, 이게 사람에게서도 동물과 비슷한 수용체가 남아있어서 이를 이용해서 감염이 되는 문제들인 듯 싶고, ②에 대해서는 박쥐의 경우 "일부바이러스감염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어기전 진화 → 바이러스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 진화 → 박쥐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진화에 대한 새로운 방어기전 진화" 요런 메카니즘으로 바이러스와 같이 알콩달콩 살아왔다고 하네요. 그러니 spillover host인 인간이 이러한 지옥에서 살아남은 바이러스들에 대한 대처가 상대적으로 미흡하기 때문에 이렇게 심각한 질환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들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사실 바이러스의 이런 면들은 인간과 인플루엔자와의 관계와 비슷한 듯 싶어요. 수십년에 한 번씩 antigenic drift와 antigenic shift를 통해 인플루엔자가 페이스오프 하면, 치사율과 유병율이 심각해졌다가 인간들의 면역체계가 이에 대한 방어기작을 개발해서 효율적으로 새로운 인플루엔자에 대해서 대처하고, 그러다가 또 수십년 지나면 또 인플루엔자가 변이를 일으키고. 

뭐, 이에 대해서는 많은 과학자들이 동물들과 인간간의 면역체계 비교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나 봅니다. 사실 인간이랑 초파리, C.elegans도 선천성 면역체계는 많이 비슷하다고들 해요. 


4. 우째 대처할 것인가? 

뭐, 현재까지는 대증치료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정부기관이 대처를 잘 하는 수 밖에는 없겠죠. 일단,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의심 환자에 대해서 격리를 통해 다른 환자/보호자와의 접촉을 막아야 할테고, 일반 대중들은 개인위생에 각별히 신경쓰는 수 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이게 호흡기를 통해 감염이 되는지의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는 않은 듯 싶지만, 최초 확진 환자의 가족들 역시 MERS 환자로 확진된 걸 보면, 호흡기를 통해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듯 싶네요. 너무 지레 겁 먹을 필요도 없지만, 너무 안일하게 대처해서도 안 되겠죠 뭐. (근데 XXXX본부의 계속된 닭짓을 보고 있노라면 개인적으로 좀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그래도 어제 오늘 갑자기 떠도는 괴담같은 거 믿지는 마세요. 얘네들도 본질적으로는 걍 꽤 쎈 코로나바이러스에 불과합니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충분히 확산을 막을 수 있어요.)

저도 사실은 MERS 등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지식이 일천한지라 제 습자지같은 지식은 요 정도이네요. 더 심오한 정보는 아마 저보다 유능하신 다른 분들이 어딘가에서 글을 쓰고 계실 듯 싶어요. 

다들 개인위생 철저히 하시고 건강하세요. 


References


1. 위키피디아, Middle Easty Respiratory syndome, 

http://en.wikipedia.org/wiki/Middle_East_respiratory_syndrome

2. 위키피디아, Middle Easty Respiratory syndome corona virus

http://en.wikipedia.org/wiki/Middle_East_respiratory_syndrome_coronavirus

3. Bean AGD, Baker ML, Stewart CR, Cowled C, Deffrasnes C, Wang LF, Lowenthal JW. Studying immunity to zoonotic diseases in the natural host - keeping it real. Nat Rev Immunol 2013; 13:851–61. 



 2014년 4월, 우여곡절 많았고 길기도 길었던 6년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생리학이라는 학문을 더 깊게 공부하며 평생 학문의 길을 걷기로 한지 벌써 두 달째가 되었습니다. 생리학 교실의 조교로서 본과 1학년 학생들을 실습과 수업시간에 자주 마주치게 되니 2010년의 제 본과 1학년 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예과 때 동아리 행사나 동문회 행사등을 통해 만난 본과 선배님들은 항상 저희를 겁주셨었습니다.


  본과 생활은 '상상 그 이상' 일 것이라고.


  해부할 때 계속 맡게 될 포르말린 냄새가 매우 독하기도 할 뿐더러, 피부, 머리결도 다 망가질테니 그냥 포기하라고.


  공부량의 신세계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부학으로 본과 1학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배들이 말씀하시던 것보단 할 만 했습니다.

  사실 해부학이 사체를 가지고 하는 수업이다 보니,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포르말린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해부하면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 말고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기증자분께 정말 감사히 생각하며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가자고 다짐하고 열심히 실습 수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 그 전리품으로 푸석해진 머리와 피부를 얻었고, 결국 해부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열심히 길렀었던 제 머리는 단발로 바뀌었죠...^^

 

  생리학, 생화학 등을 함께 배우고 공부하면서 처음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잠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밤을 못 샜습니다. 밤을 새면 다음 날에 좀비가 되었거든요. 하지만 이 곳에서 밤을 새지 않고 시험을 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뭐 제가 벼락치기 파였던 것도 있긴 하지만, 밤을 새지 않으면 시험 범위를 한번이라도 다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시험에 임하는 학생으로서 시험범위 만큼은 한번이라도 다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친구들과 열람실에서 서로 잠을 깨워주며 편의점을 들락날락 했던 기억이 납니다.

 

 

 

 

  5월 정도였던 것 같네요. 

  지금은 다 져 버린 것 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랬죠. 저희 학교 캠퍼스도 나름 예쁘기로 정평이 난 학교인지라, 캠퍼스 곳곳에 참 사진 찍을 맛 나는 포토존이 많았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만큼 저와 제 친구들의 기분도 꽃가루처럼 둥둥 공중에 떠다녔었습니다만 시험과 실습에 치여 삼십분 정도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는 캠퍼스 나들이도 결국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해부학 실습과 수업이 모두 끝나고 기분 전환으로 같은 학번 동기들 다 같이 소풍 겸 해서 캠퍼스 내를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어서 나름 신나게 봄을 만끽하며 캠퍼스를 돌아다니는데, 다른 과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의대생들인가봐." 

 

 ????? 

 

  아니 우리가 얼굴이나 옷에 써붙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나 놀래서 주변의 동기들과 저를 돌아보았죠. 하... 그 이유를 알 만했습니다. 캠퍼스의 다른 사람들은 파스텔톤, 밝은 색의 옷들을 상큼하게 입고 있는데, 우리 동기들은 하나같이 칙칙한 검은 색 옷인데다가, 옷 두께조차도 남달랐던 거죠.


한창 따뜻한 봄날씨인데도 추운 해부학 실습실과 강의실을 왔다갔다 하며 건물 안에서만 살다 보니 4-5월까지도 날씨 감각 없이 두꺼운 겨울옷을 입었던 겁니다. 아 그때 의대 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과 함께한 1쿼터와 함께 봄이 지나가고 2쿼터가 시작되어 3, 4 쿼터까지 면역학, 미생물학, 약리학 등 수많은 것을 배우면서 정말로 많은 양들을 머리에 구겨 넣었습니다.


오죽하면 "눈에 바른다"는 표현을 쓸까요. 정말로 눈에 한번 바르고 시험장 들어가서 그대로 시험지에 쓰고는 머리를 비우고 나오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 원래 단순 암기에 약해서 이해를 통해 외우는 걸 최대한으로 줄여 공부하는 걸 제 방식으로 삼았었는데, 의대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더군요.  공부해야 할 양이 너무 많으니 하나하나 이해 하고 넘어가려면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엔 머리에 그 많은 지식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도 없이 구겨넣을수밖에 없었던 거죠.


  처음에는 공부하면서 한 교수님께 최대한 이해해보겠다고 질문하러 가기도 했는데 교수님께서 그렇게 하나하나 파려다가는 성적 안 나온다고 그냥 외우라고 하시는 걸 듣고는 제 공부방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본과 1학년은 즐거웠습니다.^^

 원래 힘들수록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는 관계가 끈끈해지는 법이죠. 마치 고3때처럼요. 거의 하루 종일 같이 공부하고 같이 힘들어하고 같이 투덜거리면서 동기들과 훨씬 더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시험기간에 열심히 해야 하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일년에 얼마 안 되는 '비'시험기간에는 책표지도 펴 보지 않고 열심히 놀았기 때문에 나름 즐거운 기억도 많습니다. 진급만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신나게 놀 수 있었죠.


  비록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의대가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라기 보다는 의사를 양성하는 '직업학교'라는 느낌이 드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대로 '학문'의 길에 들어서려고 하는 지금에 와서는 '의학'을 하기 위한 인체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의 절대량이 많으니(비록 암기를 통한 지식이지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싶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힘든 만큼 즐거웠던 나의 본과 1학년.  23살의 제 청춘이 문득 쪼끔은 그립네요.

  

   

 

  

liaison psychiatry : consultative psychiatry 라고도 함. 정신과 의사가 병원 내에서 다른과에 있는 환자의 내외과적 상황에 따라서 정신과적 도움 및 협진이 필요할 때, 환자와 상담을 하러 가는 것. 예컨대,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져서 자살을 시도한다거나 우울한 상태가 강할 때, 그 환자의 주치의는 정신과 의사에게 협진을 의뢰함.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환자의 익명성 유지를 위해 이름과 학교는 OO을 썼음을 밝힙니다.)

"상호야, 내 좀 도와도"

소아과 전공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더니, osteosarcoma[각주:1]로 항암 치료를 받는 중학생 남자 아이가 있는데 항암제가 잘 먹히지가 않아서, 아무래도 amputation[각주:2]을 해야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

"내가 뭘 해주꼬?"

"어... 그러니까, 다리 잘라야한다는 이야기를 좀 해줘...응?"

"야!! 그건 주치의가 해야지 내가 왜 하냐?"

"내가 못하겠으니까 니보고 해달라는 거 아니냐.. 어? 상호야, 어? 니는 정신과잖아."

"아.... 야.. 나도 이런거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에휴, 모르겠다. 컨설트[각주:3] 날려라. 어데 있노, 걔는?"

이렇게 해서 그 아이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병실을 찾아가보니 까까머리 중학생이 침대에 누워 낑낑대고 있다. 

"어... 안녕. 요새 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그래서 주치의 샘이 많이 걱정하더라. 나한테 상담 부탁하길래 왔다. 기분은 어떻노?"

"예, 몸이 아파가지고요. 가끔씩 열도 나고 그래요. 몸이 힘들어요. 다리도 아프고"

".... 그래. 아이고. 참 고생이 많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가? 학교는 어데 다니노?"

"OO중학교요."

"아, 맞나? 나는 OO고등학교 나왔다. 반갑다, 야. 따지고 보면 같은 학교에서 댕깄네~"

"아, 예.."

첫번째 면담을 마치고 바로 소아정신과 담당 교수님을 찾아갔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책을 꺼내 주시면서 소아 환자의 amputation 설명 부분을 복사해 주신다. 절대로 직접 그 신체 부위를 가르키며 '이렇게 잘릴거다'라고 설명을 해서는 안된다.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며칠 뒤 두번째 면담을 가졌다. 

"기분 어떻노?"

"예, 뭐 그저 그래요."

"앞으로 치료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

".... 뭐. 잘 모르겠는데요?"

"....."

드디어 이야기를 해야한다. 병실 밖에는 소아과 주치의와 환아의 부모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해야 한다. 그런데, 왜 내가 해야하지? 이 중요한 이야기를...

"OO아, 니 지금 항암치료 받고 있잖아."

"예"

"그런데 그게 잘 안들으면, 수술 해야한다. 암을 잘라내야하는데... 자, 여기 봐라. 이게 사람 몸이잖아. 이렇게. 알겠나? 이렇게 다리를 잘라야 할 수도 있다."

".... 예."

"괜찮나?"

".... 예."

".... 어... 그래, 니는 요새 누워서 뭐하노? 책 읽나?" 

"아니요. 책도 눈에 안들어옵니다. 집중도 안되고요. 열도 많이 나고 해서요."

"아, 그래. 뭐 심심하면 부모님한테 닌텐도라도 사달라고 그래. 그거 재미있어."

닌텐도라니, 닌텐도라니...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제안이었지만, 그 당시에도 별 달리 해줄 말도 없었다. 부모님은 나를 붙잡고 애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주치의는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를 해서 애 상처안받게 다독여 달라고 사정을 하고. 그리하여 수술전날, 수술 당일날, 수술 후에도 자주 그 친구를 찾아가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의외로 담담하게 자기의 처지를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아 놀라웠다는 기억이 든다. 단, 아이가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를 했을 때 그걸 귓등으로 흘러 넘겨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었다고 자책하시는 부모님들을 다독이는 게 오히려 더 큰 과제였다. 

참, 인생이란 어쩜 이렇게 잔인할까. 딸 다섯에 겨우 얻은 아들인데. 그 금쪽 같은 아들의 사지가 잘려 나간다니.요즘도 가끔씩 생각나는 일화다. 


도대체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뭘 해줬어야 했을까? 


이런 경우 전지전능한 신이 되지 않는 이상 의사는 언제나 자괴감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소아과나 정형외과나 정신과나 이 아이를 대했던 모든 의사란 의사는 전부 다 말이다.


도대체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뭘 해줘야했을까....


언젠가는 우연히 저 친구를 만날 날이 올 것 같다. 그 때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할까. 침대 위에 팔배게를 하고 누워서는 그런 상상을 한다. 재회했을 때 어떻게 인사를 건내야 할지를 말이다. OO아, 잘 지내고 있지?

  1. osteosarcoma : 골육종으로 뼈에 생기는 악성 종양 [본문으로]
  2. amputation : 사지 중 하나를 절단해야하는 것 [본문으로]
  3. consult ; 다른 과에 도움이 필요해서 협진을 의뢰하는 것. 의사들이 협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죠. 혼자서 막 하지 않아요. 간단한 방사선 보는 것도 컨설트 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도움이 됩니다. 이번 한방 의료 기기 사건도 그런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데.... 너무 밥그릇 싸움으로만 몰아가니 원... [본문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고유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현상을 일으키며, 그에 대해 우리 몸도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는 모습은 매우 다이나믹하고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의대 미생물학은 수많은 병원성 세균과 바이러스를 공부해야하다보니 의대생들에게 그다지 인기있는 과목은 아니다. 때문에 교수님들에 대한 학생들의 인상도 좋지는 않은 편이라, '미생물학을 전공하면 마음도 micro해지는 것이냐?'는 등의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바이러스만 보더라도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다(그림1).

 때문에 수업이 나열식이고 암기식일 수 밖에 없으며, 의대생들의 본능에 따라 위와 같은 표를 디립다 외우려 하지만 못외우고 괴로워한다. 필연적으로 강의도 지루해지기 쉽다.

 9월부터 의학미생물학 강의를 시작해야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 사실은 더욱 현실적인 고민이 되었다. 나는 재밌는 강의를 하는 교수가 되고 싶은데, 미생물학이라는 과목의 특성상 참 쉽지가 않다. 강의에 다루는 세균과 바이러스 등이 제각기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녀석들이니 어느 하나 띵기고 넘어갈 수 없는 입장이다. 

 사실 이 고민은 의과대학 전체의 고민이기도 하다. 의학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의학지식의 양도 팽창하고 있으니 학생들에게 가르쳐야할 내용은 점점 늘고 있으며, 이것은 수업시간을 늘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고민에서 나온 것이 Problem-based learning(PBL)이라는 의대의 교육 방식이다. 조금씩 정보가 제공되는 환자 증례를 가지고서 소그룹이 토론과 자율학습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수업이다 (그림2).

튜터(교수)는 있지만, 조율 이상의 '강의'를 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지금은 많은 의과대학들이 강의방식의 수업에 PBL을 추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논란이 매우 많았던 교육 방식이다. 반대하는 교수들의 의견은 "필요한 내용을 강의를 통해 가르치지 않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지식을 가질 수 있겠느냐?"하는 것이었다. 이에 Harvard 의과대학에서 절반의 학생은 강의방식으로, 절반의 학생은 전면PBL 방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학업성취도를 비교해봤더니 '차이가 없다'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PBL교육방식의 보편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역시 모든 것은 실험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게 교육 방법이라 할지라도. 학생들의 '자율학습능력'은 생각보다 훌륭했던 것이다. 교육선생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모습이다.

 지금의 미생물학 강의는,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총론과, 각각의 세균과 바이러스와 그에 의한 질병을 배우는 각론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힘없는 막내교수라 내 주장을 강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미생물학 또한 PBL도입의 사례에서 본 바와같이 학생들의 자율학습능력을 신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수업시간 수를 줄이고, 강의는 총론 위주로 해야한다. 각론을 강의 하더라도, 병원체 중심의 분류 방식에 따른 강의가 아닌, 증상과 전염경로 등 임상 진료상황에 맞춘 카테고리로 강의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그로써 학생들의 흥미 유도와 자율학습 장려에 도움이 되어, 의대생들이 미생물학을 재미있는 과목으로 꼽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저는 학생신분으로 생리학 강의를 들은 것이 10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2007년도에 생리학교실에 조교로 남아 실습강의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3년째 신경생리와 신장생리 부분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생리학강의와 공부접근법에 대해 학생 때 느낀 점과 현재 입장에서 느끼는 점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본과 1학년 때 저는 해부학보다는 생리학을 더 좋아했습니다. 저는 암기보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부분이 더 공부하기가 편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의를 해주시는 교수님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원서를 읽어서 인체생리를 이해하기에는 시간도 없었고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부분은 공부 잘 하는 친구에게 의존하거나 족보에 의존하였습니다. 사실 족보만 다 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했으니까요

(생리학 교과서 중 하나인 가이톤(Guyton))

저는 생리학에서 특히 세포막 채널, 전기생리학 그리고 신장생리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또한 생리학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은 순환생리부분 시험을 치를 때 보상반응 전 상황으로 시험문제를 이해하고 풀어야 할지, 아니면 보상반응 후 상황으로 시험문제를 이해하고 풀어야 할지 모호한 부분이었습니다.

본과 3, 4학년이 되면서 생리학이 정말 중요한 과목이였음을 느꼈고, 아마도 다들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과 3, 4학년 때는 다시 생리학 책을 찾아보지는 못했습니다. PK실습준비와 국시준비로 다시 생리학 공부를 하기가 어려웠던 부분도 있고, 본과 1학년 때 생리학 교제라든지 정리본들을 모두 잃어버려, 생리학 원서를 보기에는 너무 힘든 부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졸업 후 처음 조교가 되어 생리학 강의를 다시 들어보니, 훨씬 이해가 잘 되었고 기억에 남았지만, 한 가지 느낀 점은 교수님들께서 너무 많은 내용을 다 알려주시는 것은 아닌가, 또 너무 기초적인 부분까지도 자세히 강의하시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기초의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생리학의 기초적인 내용인 세포막 채널, 전기적 성질, 세포내 신호전달 등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과연 본과 1학년 학생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의사로써 꼭 알아야할 내용인지 등이 의심도 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신경생리와 신장생리를 강의하면서 이러한 자세한 기초적인 내용은 간략하게 강의하고 넘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대신 전체 신경생리와 신장생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를 쉽고 간략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 본과 1학년 후배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교수님마다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과 강의스타일이 다르니,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 다 외우려 하지 말라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정부분 생리를 이해하고 큼직큼직한 내용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한글판 인체생리학 책을 잘 이용하라입니다. “이석강 또는 김영규 저, 인체생리학 (고문사)”김기환, 엄융의, 김전 저 생리학 (의학문화사)” 책이 좀 오래되긴 하였지만, 나름 한글로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다양한 한글판 인체 생리학 책들)

세 번째는 강의록에 기록을 잘 해두던지, 공부 잘 하는 친구의 노트를 복사해두던지, 아니면 자신만의 정리노트를 만들어보라입니다. 이런 습관을 들이면 과목이 진행되어갈수록 전체를 볼수 있고, 진급을 하고나서도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생기게 됩니다

마지막은 첫 번째 내용과 비슷합니다만, 의사가 될 사람으로서 생리학에서 꼭 기억하고 이해해야할 내용이 무엇인지 잘 선별하여 공부하고 기억하라입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겠지만, 모든 의과대학 과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방대한 모든 지식을 다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 이를 위해서는 수업을 주의 깊게 잘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도 시험기간이라 밤새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보이네요. 저는 생리학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의과대학 공부는 항상 얕고 넓게 아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다시 반복과 반복을 하면서 살을 붙여나가야 합니다

시험기간전에 일주일동안 한 과목을 한번 보았다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임상과목 공부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아주 얕고 넓은 지식을 위해 아주 빠른 속도로 시험범위 전체를 공부하고 (반드시 하루만에), 그 과정을 적어도 다섯 번 이상 반복을 하면서 조금씩 살을 붙여가야 하겠습니다 (반복할수록 오히려 속도가 느려지겠지요). 이러한 공부방법이 국시공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교육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의 경험담과 느끼는 점들이 의과대학생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계명의대 생리학교실 연구강사 박재형



나는 평생을 연구만 하는 사람 혹은 앞으로 연구만 할 사람이다. 의사이긴 하지만, 임상 진료를 업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 보험의 실제 폐해에 대해서는 몸소 겪어본 적이 없다. 특히나 보험 심사를 통해서 진료 청구 후, 청구 금액이 삭감되거나, 환수된 경험은 더군다나 없다. 가끔씩 환자를 보기도 하고, 연구 기간 동안 환자를 보기도 했지만, 개원을 했거나, 개원가에서 일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의사로서 현장에서 뛰고 있는 내 가족들과 내 주변 동기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있다. 현재 나는 한국에 있지 않고, 한동안 한국에 들어갈 예정은 없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연구하는 입장으로 다양한 코웍과 임상 현장을 느끼면서, 여기는 되는데 왜 한국은 안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대표 편집인인 "오지의 마법사"의 조언(?)에 따라, 앞으로, 조금은 한국 의료계에 시사적인 글을 쓰고자 한다. 내 의견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내 의견이 무조건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칫하면 넘길 수 있는 혹은 현재까지 암묵적으로 넘어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조금은 "꼬집어가면서 의식하는 일"이 의료계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남기고자 한다.

가족이 연계되어 있고, 나 자신이 의사이기 때문에, 완벽한 객관성 혹은 중립성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임상 진료를 하지 않는 기초 연구자로서 혹은 제 3자로서의 시각이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는 동료 의사들의 입장보다는 "조금은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형태가 올바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니, 생산적인 비판이나, 댓글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오늘은 시작하는 글로 노환규 전임 회장의 "의사, 환자 정부 그리고 민간 보험 회사"에 대한 슬라이드와 "과학자의 중립성 그리고 깨어있는 생각"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한국 의료 시스템이라는 곳에서 희생을 하고 있다. 의사도 그러하고, 환자도 그러하다. 일견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내재된 문제는 안 보인다 뿐이지, 항상 존재한다. 마치 통증을 겪기 전에 전이되고 퍼지는 암처럼. 다만, 섣불리 건드리기에는 너무나도 많이 와버렸고, 갑자기 고치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있고, 더군다나 많은 돈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애써 안 보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다. 

항상 윤리란 것은 상대적이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을 것 같은 윤리에서 "옳고 그르다는 것이 상대적이다" 라는 말은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여기 미국에서는 무참히 깨지는 경험을 많이 하면서, 모든 것이 상대적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었고 윤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물론 대부분의 가치들은 비슷하고, 한국에서 괜찮은 놈들은 미국에서도 괜찮고, 미국에서도 괜찮은 놈들은 한국에서도 괜찮은 놈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사, 환자, 정책 입안자(정치인) 그리고 보험 회사)이 걸려있는 의료 시스템에서의 "어떤 것이 더 올바른가"에 대한 윤리는 훨씬 더 복잡하다. 모두들 한꺼번에 만족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래, 전임(!) 의사협회장이신 노환규 선생님의 슬라이드가 있다.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단지 하나의 슬라이드일 뿐이다. 하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명확하게 문제를 꼬집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의사들의 밥그릇보다 더 큰 밥그릇을 가진 사람들은 무대 뒤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는 의사만이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의사도 보지만, 궁극적으로 환자도 보게 된다.

대한민국 의사들 왜 투쟁하는가 from Hwan-Kyu Roh 화살표를 클릭하시면서 넘기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확대해서 보시길 권장합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라도 꼭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이 곳이 의과학자 블로그인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보면 시사적인 혹은 의료 시스템을 꼬집는 글이 블로그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의과학자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언젠가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알아야할 정보라 언급했다. 아울러, 연구를 하는 혹은 하고자 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환자가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과학은 항상 객관적인 근거로 승부하고,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이용하는 사람은 중립적이지 않을 가능성을 언제든 내포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것이 과학 정책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라는 이유로, 또는 중립적이고 싶다는 이유로, 그 정책을 만드는 것에 의견내는 것을 외면한다면, 내가 중립적으로 만든 결과로 타인이 미래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너무 정치 편향적인 과학자도 옳지 않지만, 너무 무관심한 과학자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항상 깨어있는 생각. 거창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항상 깨어있을 필요도 없다. 가끔씩 나를 스쳐가는 사안에, 조금의 생각을 보태는 것. 단, 그 생각에는 고민이 있고, 근거가 있고, 대안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 쳐봐도, 변하지 않을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할 것은 변한다. 하지만, 내 사소한 생각 하나가, 미래 세대의 변화를 이끄는 촛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2014.5.25 나비 검객.

입시공부 끝에 만난 대학생활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대학가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야지 하며 버텨내었던, 내 고등학교 생활이 허망할 정도로. 그 덕에 예과 때 맘껏 놀라는 본과 선배들의 말에 충실히 어영부영 예과 생활을 보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예과 2년동안 지내는 캠퍼스와 본과 4년 동안 캠퍼스가 지리적으로 달랐고, 그런 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커서 예과 때까지는 전혀 의대생이라는 자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장면까지 기대했던건 아니지만..


본과 캠퍼스 기숙사에 입사하며 이사를 한 후에야 내 자신이 의대생이라는 자각과 중압감이 동시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입 후 처음 만났던 의대다운 학문은 모든 의대생들이 그렇듯이 골학이었다. 돌이켜보면 단순암기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 단순암기조차도 차후에 만날 다른 과목에 비해서는 하찮을 정도로 양이 작은 과목이었지만, 본과 수업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지겹도록 반복적으로 암기하고 쏟아내고 하는 생활의 시작점이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다고 느끼며 배우게 된 과목이 생리학이었다. 생리학 또는 physiology, 이름부터 내가 좋아하던 과목인 물리, physics랑 닮아있었고 과목 내용 자체도 그러했다. 의대 본과 1학년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을 내 기준에서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해부학은 형태에 대한 암기, 생화학은 핵산,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에 대한 암기(적어도 나에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라면 생리학은 세포, 기관, 생명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이해하는 과목이었다. 내가 생리학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생리학에서 배웠던 심장생리, 신장생리, 호흡생리 등등은 병리학, 더 나아가 임상과목 순환기학, 신장학 등등을 배울때 기반지식으로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전기생리 분야를 가장 즐겁게 공부했었는데, 전기화학평형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막전압 방정식, 그러니까 Nernst 방정식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사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라고 넘어가고 싶은데, "오지의 마법사"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 짧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왼쪽항을 먼저 순서대로 살펴보면 몇가 이온인지 나타내는 z값, 1가 양이온 Na+라면 1, 2가 양이온 Ca2+라면 2, Cl-라면 -1 등으로 매겨진다. 전압 E은 세포막를 기준으로 양 쪽에 걸리게 되는 상대적인 전위차를 말하는데 이 세포막은 일종의 축전기같은 역할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전류가 직접적으로 흐르지 못하는 축전기나 인지질 이중막으로 이온이 잘 통과 못하는 세포막은 성격상 비슷하다. 패러데이상수 F는 단위가 C/mol로서 1몰의 전자가 가진 전하량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면 왼쪽항은 막 사이에 걸리는 전기적 에너지(전압x전하량)다. 

오른쪽항은 기체상수 R은 단위가 J/mol*k 이다. 1몰의 분자의 화학적 자유에너지라고 보면 된다. 온도 T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고, 세포막 안팎의 이온농도 C로 이루어진 항을 보면, 결국 농도차에 의해 생기는 세포막를 통과하려는 에너지로 정리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이온의 전기에너지인 왼쪽항화학에너지인 오른쪽항평형에 이르는 지점을 찾는 방정식이다. 이온은 전하를 띠고 있는 동시에 농도 구배에 영향받는 분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전기화학적 에너지가 평형상태에 이른 상태의 평형전압, 또는 이온의 농도를 알 수 있다. 사실 아주 적은 농도의 이온 이동만으로 막전압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세포 안밖의 이온 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평형전압을 알아내는데 쓰인다. 

이 방정식은 전기적 특성을 가진 이온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없는 세포막을 만났을 때만 성립한다. 때문에 태초 생명 발생의 신비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초의 생명이 세포막으로 외부 환경과 구별짓고, 세포막 내부에 이온, 각종 단백질을 모아 생긴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걸 다시 좀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시바다에서 최초로 생명체가 생성되려할때, 주변환경과 구별되는 경계를 세포막으로 구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포막 안에서는 유전체, 단백질 등을 구성했겠지. 그런데 이 물질들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음전하를 띠고 있다. 그래서 상보적인 양이온을 대량으로 세포 안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하는데, 이게 K+ 이온이다. 그리고 세포막 바깥에는 원시바다에 풍부한 Na+ 이온과 Cl- 이온이 대응하게 된다. 그리고 안정 상태의 세포는 K+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높고, Na+ 이온과 Cl- 이온에 대해서 투과성이 낮다. 그 결과 안정상태의 세포의 막전압은 K+ 이온의 평형전압에 가깝게 된다. Nernst 방정식의 등장이다. Nernst 방정식에 세포 내의 K+ 농도 140mM, 세포 바깥 농도 5mM 을 넣으면 평형전압이 대충 -80mV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안정을 이룬 덕분에 세포는 삼투압으로 인해 세포막이 터지거나 하지 않고 외부환경과 분리된 내부환경을 이룰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불투과성인 Na+이온의 평형전압은 약 +40mV이상인데 (K+ 이온과 분포 양상이 반대이므로), 외부에 풍부한 Na+이온에 대해 투과성이 생기게 하면, 다른 말로 Na channel이 열리면 Na+ 이온이 세포 안쪽으로 유입되면서 세포의 막전압이 순간적으로 +40mV로 치솟게 된다. 이것은 전기생리나 신경생리에서 중요한 개념인 활동전압을 일으키는 기전이다. 

여튼! Nernst 방정식은 생명 발생의 모습부터 활동전압이라는 개념까지 두루두루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물리학자들이 행했던 노력들, 자연의 네가지 기본힘인 전기력, 중력, 강력, 약력을 통일하려 했던 그 노력들,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탄생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들을 연상케 했다. 생명탄생의 신비 중 일부를 훔쳐본 마냥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님 말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뇌/마음 역시 수학,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생리학 수업 덕분이었다. 비록 공부를 더 하면 할수록 인간의 뇌/마음이 그렇게 쉽게 답을 내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뱀발. 요즘 신경과학의 철학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마음/뇌 문제는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서평을 쓰고 싶지만..읽는 속도가 영 느려서 언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달정도 읽어서 이제 180쪽 정도...OTL 아직 남은게 700여쪽...으하하하!


본과 1학년.

나의 본과 1학년은 1월부터 시작되었다.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의대 선배나 의대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골학OT[각주:1], 동아리에서 해주는 골학OT을 들으면서 예과 2학년 겨울방학을 보냈다. 예과 때 여유롭게 지냈던 다른 방학들과는 달리, 겨울 방학은 본과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무언가 이제는 더이상 놀 수 없겠다라는 복잡 미묘한 심경으로 방학을 보냈던 것 같다. 동기들도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방학 때, 탐구 생활을 살펴보면서 방학 숙제를 하는 것처럼, 골학책(메뉴얼)은 본과를 곧 맞이할 예과 2학년들에게는 "탐구 생활" 책과 같았다. 다만, 다른 것은 잠자리나 소금쟁이 대신 다양한 뼈 이름과 신경 다발들이 나열되어 있다는 사실뿐. 탐구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골학책을 살펴 보면, 진짜 탐구할 것이 많긴 하다.

처음에는 이름도 외우기 힘들었다. 수많은 라틴어들과 정체모를 단어들. 해부학 용어와 짬뽕되어 있으면서도 알듯말듯한 단어들. 영어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에게도 의학 용어새로운 언어일 뿐이었다. 분명 영어로 쓰여져 있지만,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들을 접하면서 의학 용어를 깨달아 갔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골학은 해부학을 필두로 하는 의대 본과과정을 배우기 이전에 잠시 맛보는 시식 음식 같은 느낌이 있다. 다만, 맛보고 나서 맛이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인 시식 음식과는 달리, 본과 공부는 꾸역꾸역 집어 넣어야만 했다. 먹고 토할지언정 쏟아지는 정보를 온 몸으로 받아내어야만 했다.



골학은 말그대로 골학이다. 뼈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이다. 우리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뼈들이 어떤 형태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뼈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주변에 어떤 구조물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이다. 골학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긴 하지만, 단순히 뼈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의대에서 쓰는 용어들을 배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학 용어의 틀은 대부분 이 때 완성되었던 것 같다.

아울러, 뼈는 어디까지나 인체의 기둥이 될 뿐. 그 외적인 부분, 예컨대, 뼈 주변에 붙은 근육들, 혈관계, 신경계 그리고 뼈가 담고 있는 내장기관, 뇌 등에 대해서도 간략히 배운다. "간략히" 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전혀 간략하지 않다. 골학을 공부하고 나면, 뼈에 대해서 다양하게 아는 것은 물론이고, 말 그대로 피와 살이 되는 의학 지식을 배운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실제로, 의대 학점에서 골학이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적다. 굳이 학점으로 따지면 0.1학점 혹은 0.5학점 내외일 것이고, 해부학에서도 차지하는 위상도 낮다. 하지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골학을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이 해부학을 "초열심히"하는 현상은 그리 관찰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두쪽나지도 않는다. 골학은 어디까지나 골학이다. 자신이 의학에 처음 발딛는 학문이라고 본다면, 그 것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참고로, 난 골학때 선배가 가지고 있었던 두개골(skull)과 함께 2주를 살았었다. 지금은 인조 뼈로 공부하는 것 같던데, 당시만 해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사람 뼈를 전통처럼 가지고 있는 동아리나 고교 동문이 있었다. Skull 파트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골학 공부를 한창할 당시의 내 책상위에는 항상 두개골이 있었다. 누구 것인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책상 위에 Skull과 함께 Femur(장단지뼈)가 아주 자연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Skull을 이리 돌리고 저리돌리면서 공부했지만, 내 동생은 항상 무서워 했다. 그리고 내가 없었던 하루, 그 skull 때문에, 동생은 혼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이 오기 전까지 하루 종일 밖을 배회했다. 미안하다 동생아. 지금에서야 사과한다.

상상해보라. 방 안에는 스탠드만 켜져 있고, 그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두개골 뼈를 들고 유심히 살펴 보고 있다. 책상 위에는 아주 긴 사람의 장단지 뼈가 놓여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스탠드만 켜져있는데, 방문이 아주 살짝 열려있고 당신이 그 걸 목격한다면. 빨리 도망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상황은 스릴러 속에서 범인을 보여줄 때 쓰는 장면 아닌가? "어떤 의대생이 방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다면 당신은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두개골에는 참 많은 구조물들이 있다. 구멍도 많고,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많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런 독특한 구조물 하나 하나마다 이름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사실은  그 이름을 무조건 다 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더 신기한 사실은 결국은 동기들 대부분이 그 구조물들의 이름을 다 외워서 서로 그 구조물에 대해서 농담을 하면서 논다는 사실이다. 너는 patella bone가 있네 없네, Zygomatic bone이 크네 작네... 하면서. 설마... 하겠지만, 본과 1학년이라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뼈를 가지고 보면서 모든 구조물은 나름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울러 어떤 사소한 구조물도 그냥 생긴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것이 생겨야할 조건을 수반한다. 예컨대, 뼈에 어렴풋이 발견되는 그루브(골-골짜기)이 있다. 대부분의 뼈에 있는 그루브는 정맥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자발적으로 피를 보낼 수 없는 정맥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뼈에 이런 중요 그루브들이 있다. 골학때는 이 그루브 이름을 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 중에 하나는 그 그루브가 왜 중요한지, 이유 역시 외워야 된다. 그냥 뭐든 말하면 외워야 한다. 외우다 보면 이해가 가더라... 누구는 그루브에 맞추어 리듬감 있게 춤을 추겠지만, 우리는 이 그루브에 맞추어 특정 정맥을 외워야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구조물에 이유가 있고, 나름의 설명도 있다. 충분히 재미도 있다. 설명을 곁들여 공부하면 아주 즐겁다. 하지만, 당신이 공부해야할 양은 "이해를 하고, 설명도 듣고, 교과서도 읽으면서 하기"에는 너무나도 양이 많다. 15시간을 공부해야만 모든 것을 한번 읽고 이해할 수 있는데,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10시간밖에 없고, 그 시간안에 무조건 외워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의대 공부의 한계점이라면 한계랄까. 나도 글 읽을 줄 알고, 이해할 줄 알고, 설명을 곁들이면서 공부할 줄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의대, 병원... 모든 일들이 이런 식으로 벌어진다. 하루 24시간 동안 30시간 분량의 일을 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의대에서는 자연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겨서 학습할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하는 족보만 보고 공부하기에도 빡빡하다. 물론 "이런 것이 효율적이냐" 라고 한다면, 분명히 이론이 난무하고, 난상 토론이 될 것이다.  

그렇게 골학과 해부학이 지나가면, 벌써 봄이 끝나버린다. 남들은 벚꽃놀이도 가고, 봄의 따뜻한 온기를 즐기지만, 해부학 책만 파고 있는 의대생들에게는 봄이 없는 듯하다. 아니다. 가끔씩 이 힘든 상황에서 봄을 즐기고자 하는 외계인 무리인 "캠퍼스 커플"[각주:2]이 탄생하기도 한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이 피어나는데 하물며 해부학 수업쯤이야.

  1. '골학'은 해부학의 입문과정으로, 뼈(골,bone)의 구조물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목이다. 선배들로부터 이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받곤 한다. [본문으로]
  2. 엄밀히 말하면 캠퍼스 커플(CC:Campus couple)이라기보다는 클래스 커플(Class couple)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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