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말한다.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을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대답을 할 수 있고, 그 문장에서 정확한 정보를 캐치하고, 그에 따른 판단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외에도 체스, 퀴즈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인공 지능이 개발되고 있고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결국, 궁극적인 인공 지능의 목표는 "사람과 같은 사고를 하고, 사람과 비슷한 대화를 하는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계가 인공 지능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튜링 테스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상황, 뉘앙스에 따라 똑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정보를 포함할 수 있다. 예컨대,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문장을 예시로 들어 보자. 질문 자체는 아주 간단하고, "예-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문장이지만, 질문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질문하는 뉘앙스, 사업이 망하고 나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고 있는 여자 친구 등 대상에 따라서 각기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이런 은유적 질문, 혹은 상황을 판단해서 던지는 질문에 충분히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다.


(왓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림 - IBM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컴퓨터의 입장으로 돌아간다면, 이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된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단순한 말 하나에 대답하기 위해서 컴퓨터는 여러가지 판단을 해야만 답을 할 수 있다.


첫째로는, 이 질문이 진짜 사실을 묻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은유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과연 그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지 유추해야 한다. 뉘앙스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셋째로,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처한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는 "예-아니오"가 아닌 대답을 해야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판단 과정이 존재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렇게 컴퓨터가 직접적으로 알아듣기 힘든 대화(코드가 아닌)를 인공 지능에서는 "자연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대화하는 모든 언어는 사실상 자연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매 질문마다, 다양한 판단을 요구하지만, 충분히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는 과정. 이것은 인간이 가진 고유의 능력이라고 여겨져 왔다. 


이런 상황이 최근 IBM에서 개발한 왓슨에 의해서 깨지고 있다. 참고로, 여기에서 나오는 왓슨은 DNA의 그 왓슨이 아니라 IBM의 창립자 토머스 왓슨이다. 그리고 이제 조만간 왓슨은 인공 지능의 대명사로 그 둘보다 더 유명해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아직까지는 완벽하다고 볼 수 없지만, 적어도, 퀴즈쇼 영역에서 만큼은 그런 일이 벌어졌고,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미국 퀴즈쇼 중에서 아주 유명한 Jeopardy라는 퀴즈쇼가 있는데, 이 퀴즈쇼에서 엄청난 차이로 우승을 한 것이다. (참고하실 분은 아래 동영상을 참고해 보세요. ^^) 사람처럼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는 것은 물론, 은유적인 단어를 포함한 질문에까지 대답을 한다. 물론 영어로 된 표현이긴 하지만, 기존의 컴퓨터로는 단순히 대답하기 힘들었던 자연어를 이해하고, 대답하는 인공 지능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제 의사의 영역으로 돌아 보자. 사실, 방대한 지식, 그리고 정확한 판단, 시진, 촉진, 청진 등 다양한 감각과 복잡한 정보가 꼬여있는 의료 영역에 인공 지능의 관여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영역에까지 인공 지능 왓슨이 다가 오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실제로 이런 대세를 이제는 거스를 수는 없는 것 같다. 상당한 뉘앙스가 들어 있는 질문까지 대답할 수 있는 인공 지능 컴퓨터. 인공 지능의 "의사 놀이"는 이제 놀이를 넘어서, 진단의 영역까지 들어온 것 같다. 왓슨은 이제, 의료 영역에서

 

"진단을 위해 더 필요한 history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finding을 통해서 어떤 진단을 유추할 수 있는가" 

 

까지 왔다.


이제, 의사의 할 일을 재정의하고, "어떤 방향으로 의사를 교육할 수 있느냐"가 의사라는 "인재 양성"에 새로운 개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컨대, 단순한 의학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 지능에 저장된 정보를 적절한 형태로 응용해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판단을 내리는 의사의 역할 말이다. 마치 현재 아무도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 번호를 하나하나 외우지 않는 것처럼, 의료 지식 역시 단순한 지식의 저장과 리콜보다 지식의 응용과 판단을 조금 더 강조하는 형태로 말이다.
 

 (의사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인공 지능, 의사라는 직업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형태와 교육은 변할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허준 시대의 의사가 더 이상 외과적 수술을 포함한, 다양한 내과 질환을 치료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의 의사의 개념과는 달리, 현대의 "의사"의 개념은 완벽히 진화되었고, 그 당시와는 다르게 재정의되었다.


이제 의사는 약초를 구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정제된 약을 "적합한 통계와 근거"기반해 효능을 검증하고, 환자에게 처방한다. 그에 따른 교육도 필요에 따라 대치되었고 현재 평균 수명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앞으로 더 발전된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비록 시대는 다를지라도, 의사는 의사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고 있다. 그에 발맞추지 못한 의사 집단들은 도태되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의사는 직접 X-ray를 찍지 않고, 피를 뽑아 직접 검사하지 않아도 된다. 시진, 문진을 하긴 하겠지만, 결과를 통합적으로 살펴보고 그에 근거한 판단이 의사의 주 역할이 되었다. 이 때, 의사의 역할은 다양한 환자 정보를 통합적으로 판단해서 근거에 기반한 치료를 하는 것이 된 셈이다. 이제 "인공 지능"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계산을 넘는 이런 통합적 판단도 가능하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UC irvine에서 시도되는 색다른 시도. 이런 변혁과 도전이 가능한 학교가 우리 나라에도 있을까?)


현재, 의료계에서 화두가 될 가능성이 큰 구글 글래스 역시 그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단순히 기록한다는 것을 넘어서, 정보를 저장하고, 인공 지능과 결부되어 정확하고 필요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 궁극적으로 판단은 의사가 하겠지만,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병의 가능성보다 훨씬 더 큰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인공 지능. 의학에서의 인공 지능의 묘미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인공 지능을 사용하는 모두가 "예외적 질병"을 잘 발견하는 닥터 하우스[각주:1]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예외적 질병"을 잘 발견하는 닥터 하우스)


개인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자신을 계발할 것인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보겠다. 극단적으로 본다면, 저장의 기능을 완전히 인공지능 혹은 기계에 맡기고, 판단을 우선으로 하는 의사. 반대로, 저장의 기능을 충실하게 따라서 환자에게 신속한 진단을 내리는 고전적인 형태의 의사. 어떤 모습이 더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그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비지니스의 관점에서는 과연 어떤 형태로, 정보를 취득하고, "의사에게 올바른 근거를 어떤 우선순위로 보여줄 것인가"가 인공 지능의 핵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정보가 충분히 있는 어느 순간부터는 "정보가 많은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적절히(라고 말하지만 아주 어렵다) 취사 선택한 정보를 제시하는 똑똑한 인공 지능의 개발은 의료의 발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한다.


끝으로, 왓슨 개발자 중 하나인 Ken의 TED Seattle에서 강연이다. 충분히 의미 있는 강연이고, 위에 언급한 질문에 대해 많은 insight를 주는 강연인 것 같다. 한 번 살펴 보면서, 미래에 대비하는 것은 어떨까?

 

 


과연 "의사"라는 직업인이 이런 인공 지능과 공존하기 위해서 나아 가야할 방향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때, "준비해야 할 소양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할 타이밍이 온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퀴즈쇼에서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멀뚱히 인공지능이 우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도전자 꼴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 사실 닥터 하우스는 일반적인 의사의 관점에서는 아주 이상한 의사라고 할 수 있다.most common disease를 항상 rule out하기 때문이다.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경우에 따라서 꼭 좋은 의사는 아닐 수 있다. [본문으로]
때는 2014년 2월이었습니다. 
국시를 치르고 나서 미국 LA에 있는 LAC+USC Medical Center에서 종양학 실습을 하는 동안 Amir Goldkorn, M.D. (이하 금옥수수 교수님) 을 만났습니다. 금옥수수 교수님과 함께 일주일 동안 신장요로 종양 병동을 회진하고, 병례 토의를 하고, 토픽 발표를 하는 등 많은 교류가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그 분이 본인의 연구실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여러 임상 시험들을 진행하면서, 또 많은 시간을 연구실에서 실험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금옥수수 교수님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저도 교수님처럼 환자를 보면서도 연구를 활발히 하고 싶습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까요?

라고 물었고, 교수님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나는 박사 과정을 밟지는 않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임상 수련을 마칠 때까지 6년 정도를 연구실에 있었어. 생각해보니 6년이면 박사를 받을 수도 있었겠네. (웃음) 일단 충분한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그리고 매우 바쁘게 살 각오를 해야해.

알고보니 그 분은 UCSF 혈액종양 내과에서 임상 펠로우 트레이닝을 받은 후, 추가로 3년을 Elizabeth Blackburn, Ph.D.[각주:1]의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각주:2]으로 있었습니다. 지금 교수님은 텔로미어를 합성해내는 효소인 텔로머레이스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금옥수수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미국에서는 의대에서 교수가 되어 연구실을 운영하는데 박사 학위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점과[각주: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학위 과정에 맞먹는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야 한다는 점입니다.[각주:4]


이 대화를 밑거름으로 저는 박사를 지원할 생각을 염두에 두면서도, 우선 연구원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 일하고 있는 연구실을 찾은 계기와 인터뷰 내용, 그리고 펀드를 받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1. 2009년 텔로미어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신 분입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양쪽 끝에 위치한 핵산과 단백질 복합체로, 염색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본문으로]
  2. Postdoctoral Researcher. 우리말로는 박사 후 연구원으로 번역하지만, 사실 doctorate degree는 Ph.D.나 D.Phil.과 같은 research doctorate과 M.D., J.D., D.V.M.과 같은 professional doctorate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M.D. 학위만을 가진 사람도 post-doctoral researcher로 일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3. 다만 한국은 사정이 다릅니다. 박사 학위가 있지 않으면 교육부 인가 교수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4. 의대에서 받는 다양한 학위가 궁금하시면, http://mdphd.kr/100, http://mdphd.kr/105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본문으로]

안녕하세요, xOculus입니다.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고민 많던 의대 시절 MDPhD.kr의 주옥 같은 글들을 읽으며 향후 진로에 대한 영감받았고, 먼저 걸어가시는 들에 대한 존경심 있기에, 기에 글을 있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진으로 대해주신 오지마법사님께 감사드리는 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하고자 니다. 글부터 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조금 부끄러우나, 경을 이해하시면 으로 제가 고자 하는 글들을 이해하시는데 도움 것이기에 이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초등학교 대퇴골두 무혈관성 사라는  진단 받고, 대퇴골의 부분을 절단하고 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은 후, 한 학기를 에서 신 기브스를 한 지냈습니다. 이 기간 안 '수학귀신'이라는 하고는 수학의 매력흠뻑 빠져버렸습니다. 로부터 저의 장래희망수학자이었고, 대학교 정수론학 책을 해서 읽을 정도로 정적이었습니다. 제 은 에르되시 (Erdős Pál)이나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G. H. Hardy) 같은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했던 신념은 고등학교 시절 지루한 입시 수학 부를 하며 들리기 시작했고, 의대에 합격할 수 있는 확률이 다고 생각한 부모님의 설득 최종적으로 의대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다른 전공을 선택하였지만, 여전히 학자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대학교 자기소개서에도 수학을 이 공부한 경험을 서술하였고, 의과학자로의 부를 뚜렷밝혔습니다. 

과에 들어와 주로 학과 수학 과목들을 재미있게 수강하였고, 과 1학년 때 배우는 의과학 과목들(생리학, 생화학, 해부학, 리학 등) 한 학구적인 교수님들의 가르침 래에서 즐겁게 배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본과 3학년에 진입하면서 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빠집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만, 본과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제가 의사가 되는 길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의학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의학자의 길'이란 각인이 새겨져 있었는데, 저는 그 길을 걸으며 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가 목표로 하는 의학자가 되어가는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본격적인 임상 교육을 받기 전에는 제 스스로를 의학자로서만 바라보았지, 임상가로서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과 2학년 2학기 때 임상 블록들을 배우면서 '이건 내가 아하는 공부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긴 하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니 저는 전히 무방비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고체계와 임상가로서 필요한 사고체계는 다소 달랐습니다. 저는 연역법에 의존한 사고체계에 했고, 임상 의학은 대부분 귀납적인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저는 임상 제를 마치 수학 문제 대하듯이 접근하였고, 이는 처절한 배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저에게 았던 부분은, 임상의학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려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재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실천해내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었습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무엇보다도 자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설계부터 시행까지 제한이 많습니다. 저는 지식의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서, 과학이라는 분야에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사람이 되고 었습니다. 

그래서 전 방황을 시작합니다. 임상 연구에 참여해보고, 생리학 실험실에 가서 실험도 해봅니다. 수학과로 전과하려고도 생각해보았고, 그 과정에서 유급도 하였습니다. 무엇을 하든 의대를 재학하는 동안에는 한 달 이상의 자유 시간을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일단 졸업을 하고 생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 무사히 시에 합격하고 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이 다음 글에서는 제가 졸업을 한 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미국에서 지렁이(C. elegans)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연구 기회를 얻었고, 어떤 식의 시행 착오를 걸쳐서,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미국과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면서 목숨 혹은 생명에 관한 윤리적 문제를 논하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료 행위 수가가 너무나도 낮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과 비교할 때도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의료비가 저렴하다고 측정되어 있는 유럽보다도 더 낮은 수준인 것이 사실입니다. 

참고로, 저는 미국에서 연구를 주로 하는 의사이기 때문에, 한국의 "의료 행위 수가"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을 우선 알려 드립니다. 의료 행위 수가는 일반적으로 내과, 외과 등 환자를 직접 대면하고 진료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의사의 치료 행위를 보건복지부에서 책정한 가격을 말합니다. 원가를 정하는 것이 민감하기도 하고 주관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현재 책정된 의료 수가는 병원을 최소한 운영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인 "원가"보다 더 낮게 책정되어 있음이 보건복지부 공식 조사 결과 알려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병원이 병원의 고유 역할인 의료 행위만 해서는 운영 자체가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의료 수가와 연계해서, 한 번쯤 고민해볼 문제인 생명의 가격그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팔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목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인 이상 평생 한 번밖에 살 수 없는데, 그 "한 번"밖에 살 수 있는 목숨을 돈과 바꾼다 하면, 바꾼 다음에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그런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럼 과연 그 "목숨"을 치료하는 비용은 싸야 할까요? 비싸야 할까요? 

 

여기에서 바로 "목숨값의 역설"[각주:1]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사망할 가능성이 99%인 질병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치료하지 않으면 거의 다 죽는 셈이죠. 하지만 이 질병을 치료하는 경우에는 사망할 가능성이 10%로 낮아진다고 가정합시다. 10%가 치료 후 죽는다고 해도, 나머지 90%의 사람들에게는 그 "치료"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치료 비용은 목숨을 구했으니, 아주 비싸야 하겠죠. 왜냐하면,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더는 살 수 없을 테니깐요. 치료를 하는 비용이 억만금이라고 해도, 더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질병을 치료하는 비용이 너무나도 비싸다면, 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로 한정될 것입니다. 죽기는 싫지만, 돈이 없어서, 그 치료를 받을 수가 없는 셈이죠. 치료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아질 수도 있고, 치료 비용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돈의 힘목숨의 힘으로 변하는 순간이죠. 

 

(기형적 수가 리포트 -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 보세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비스"라는 행위의 가격은 경제학적으로, 소비자가 서비스를 받고 나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었을 때 지불할 의향이 있는 마지노선의 가격을 의미합니다. 즉, 이 돈을 냈을 때, 이만큼은 지불할만하다고 느끼는 가격을 서비스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명품 백이 수백만 원이 넘는다 해도 가격이 내리지 않고, 그 가격을 그대로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은 그 가격을 주어도 충분한 만족감(비록, 그게 사치라 할지라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가격에 팔리는 것입니다. 강남의 미용실 가격이 높은 것 역시, "그 비용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혹은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가격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적어지게 되면, 자연히 그 서비스를 찾지 않게 될 것이고, 자연히 서비스의 가격은 내려갈 가능성이 큽니다. 경제학에서 아주 기본적인 개념인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셈이지요. 

물론 같은 값이라면, 가격이 싸면 더 좋겠지만, 싸지 않아도 사고자 하는 소비자가 많다면 굳이 가격을 내릴 필요가 없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인 셈이죠. 

그럼, 다시금 "목숨값"이라는 것으로 돌아가 봅시다. 

생명이라는 가치(목숨값)는 실제로, 자신이 존재하는 "선행 조건"이기 때문에, 명품 백 한두 개 정도의 가격으로 책정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닐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없어지니 말이죠. 그러니, 이론적으로는 자신이 지불가능한 여건 안에서는, 모든 서비스나 재화의 가격보다 훨씬 더 높아야 합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치료라는 관점으로 한 번 돌아가 보죠. 어떤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받으면 살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면, 누구라도 그 질병에 걸렸을 때, 살 가능성이 가장 큰 치료를 받고자 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 치료는, 그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한정적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수요 역시 많을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행위는 필연적으로 경제학적인 측면에서는

1) 재화(목숨) 자체가 가지고 있는 희귀성이라는 측면, 2) 수요가 많다는 측면에서 가격이 높아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보험에서 가장 많은 돈을 타낼 수 있는 것은 사망했을 때임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죠.

 

미국은 이런 서비스적인 관점으로 의료에 접근합니다. 바로 이런 관점이지요.


내가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숨"을 살려줬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느냐. 이 치료가 없었더라면 너는 더 이상 돈도 벌 수 없고, 아무런 사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데, 왜 돈을 조금 내려 하느냐?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

 

라는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물론, 대놓고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가정이 깔렸기 때문에, 치료의 행위 수가는 생명과 직결될수록 높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 셈이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또 한 번 생각해볼 문제는, "비용에 따르는 치료 행위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갈까"입니다. 

수요가 많다는 것은 그 질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격이 높으면,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리고 생명과 직결될수록 치료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을 살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아야, 살아난 사람들을 통해, 사회가 지속해서 발전할 가능성이 크겠죠. 돈 많은 사람만 살아남고, 돈 없는 사람이 치료를 받지 못해서 평생 사회를 바꾸어볼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퇴보될 가능성이 크고, 이것이 잠재적으로 가지는 사회 불안 요소 자체도 클 겁니다. 

따라서,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 행위의 가격이 낮을수록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기에, 가장 비싸야 할 목숨값과는 별개로, 치료 가격이 낮아야만 하는 역설적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물론, 이 가격이 무한정 낮게 되면, 의사도 사람인지라 근로 의욕 상실과 의료 질의 하향 평준화가 일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참고하실 분은 오지의 마법사가 쓴(의사들이 많으면 진료받는 환자 입장이 좋아질까?)을 읽어보세요. 

미국은, 사실상, 양자를 교묘하게 잘 섞어 놓은 케이스입니다.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의료 수가 자체를 높이 책정해 놓고, 그 비용을 의료 보험이라는 테두리로 둘러싸서, 기업과 혜택을 보는 사람들에게 적절히 나누어서 부담시키게 합니다[각주:2].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 중 하나가 미국의 의료보험이 비싸다는 것인데, 실제 비싸기는 하지만, 그 사람을 고용한 기업이 상당 부분을 내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부담이 적게 느껴집니다. 즉, 의료 보험 가격이 한국보다 높게 책정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직장이 있거나, 학교에 소속되어 있거나, 어디 집단에 소속되어 고용되어 있으면, 체감하는 의료 보험료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결코 높은 것은 아닙니다[각주:3]. 직장이 없거나, 자영업 등을 하는 사람들은 소속 집단이 없어서, 의료비가 높은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만, 제 주변을 보아도, 직장이 있음에도 의료비가 걱정되어서 병원을 못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즉, 사회적으로 높은 의료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직장이나 기업 입장 높은 의료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 셈인 것이죠. 

 

(출산 과정.. 출산은 생명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데, 비용이 높아야 하나요? 낮아야 하나요?)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생명과 연관된 치료비용, 즉, "목숨값"의 수가 자체는 싸게 책정된 셈입니다. 생명과 직결된 암을 치료받는 것이, 쌍꺼풀 수술받는 것보다 더 저렴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출산하는 비용이 동물병원에서 애완견 출산하는 비용보다 더 싸게 되어 있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수가가 낮으면 낮은 만큼 서비스의 퀄리티가 낮으냐? 다행히도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에 와서 느끼는 한국의 의료 수준은 치료에 한해서 볼 때미국과 대등하다고 봅니다. (안타깝게도 연구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특히, 경험적 치료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훨씬 더 높다고 느끼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여담이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뒷돈(?)이라는 도구로, 실력 좋은 의사에게는 비싼 비용으로, 실력이 없는 의사에게는 싼 비용으로 진료를 볼 수 있는 이상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있다 보니, 돈 많은 사람은 돈 많은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삽니다. 사회주의라 할 지라도, 의료 자체는 비공식적으로 미국의 그것보다 훨씬 더 시장친화적(?)인 자본주의 형태를 보입니다. 

 

의료사회적 보장 체제로 보는 나라들은 대부분 의료 비용이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가 그렇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유럽의 의대 교육은 국가가 책임을 지는 공적 제도라는 것이죠. 마치 우리나라의 육군사관학교나 경찰대처럼 말이죠. 자기 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인재를 키운다는 개념으로 의대 교육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유럽의 경우에는, 의대를 졸업한 후 의사가 되면, 국가가 요구하는 사회적 보장 체계를 따를 필요가 있고, 그에 따르는 의무도 있습니다. 당연히, 의사의 신분 역시 군인과 같은 공무원 신분입니다. 칼퇴근이 가능하고, 필수적인 일만 합니다. 더 일해도 소득이 증대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저렴"한 치료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자 하죠.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것을 의대 입학 전에 알고 들어갑니다. 

 

그에 반해, 미국은 의대 교육 자체가 사교육이고, 의사를 자영업자근로자로 보는 개념이 강합니다. 네가 돈을 내고 교육받았으니, 네가 돈을 버는 것 역시 네 뜻대로 하여라. 보험회사와 컨택을 해서 정해진 수가를 받든 지, 따로 더 높은 수가를 받든 지 국가가 상관하지는 않겠다는 식입니다. 따라서, 의사 사회에서도 실력에 따라 받는 수가가 다르고, 보험회사 역시 경쟁을 통해서 우수 의사를 영입하고, 반대로, 환자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합니다. 다만, 보험료 자체가 상대적으로 비싸죠. 여기서 또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이 모든 것을 의대 입학 전에 알고 들어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대 교육 자체는 미국과 같은 사교육인데, 사회적 의료 시스템 자체는 국가가 컨트롤하는 시스템입니다. 완벽한 유럽 시스템은 아니지만, 국가가 국민 의료 보험을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의 통제권을 국가가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즉, 자기 돈을 내면서 의대를 다니지만, 의대를 졸업하고 나서는 국가가 보장하는 돈(수가)만 바라보는 공무원 아닌 공무원이 되는 셈입니다. 물론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고 대부분의 의사가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이 모든 것을 의대 입학 전에 잘 모르고 들어간다"라는 사실입니다. 

 

의사 혹은 병원을 사업자로 봐야 하느냐, 사회 보장 시스템의 일부로 봐야 하느냐는 보건 의료에서 아주 큰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각각의 단체에서 유리한 대로 사안을 해석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이 되면 추후에 언급하도록 하죠. 

 

목숨 자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경제학으로 따졌을 때는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일수록 가격이 높아져야 합니다. 사망 보험금을 생각해 보세요. 


"목숨값의 역설"은 생명과 연계된 질환을 치료하는 비용이 적었을 때, 사회적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각주:4] 생명과 직결될수록 치료 비용 자체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적으로 본다면, 아주 합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으니깐요.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이는 "서비스 제공자인 의료 기관이나, 병원이 만족했을 때"만 가능합니다. 

의사의 평균 소득이 일반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높긴 하지만, 의사들도 장사를 하거나, 일을 하는 모든 시민들처럼, 안전하고 행복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이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가장입니다. 즉, 대부분의 의사는 수전노처럼 돈을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는 것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바라는 아버지이자 어머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소득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효율적으로 돈을 벌고자 할 것입니다.

돈을 벌어서 살아야 한다는 자본주의 "시민"이라는 큰 명제를 가진 의사의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소득이 낮아지는 치료 행위는 잘 안 하려고 하겠죠. 즉,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의 대가가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살 정도도 안 되는 경우라면, 그 의료 행위를 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죠. 처음에는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사명감에 그 길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군가를 돕다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돕는 의료 행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즉, (환자 혹은 소비자들은) 의사도 사람인 이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까닭에, 역설적으로 목숨값(의료 수가)이 저렴하면 저렴할수록, 당장은 그렇지 않겠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 행위의 공급은 점차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리고 그 서비스의 질 역시 점차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현실적으로 이 부분은 새내기 의사들의 전공 선택(인기과, 비인기과)으로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이제는 국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너무나도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평생 운동만 하고 살아온 프로 선수가 FA에서 "진정성을 보았다"라고 하는 것은 딱 깨 놓고 해석한다면, "돈도 괜찮았고(선행 조건), 대우도 좋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평생을 진료 보면서 살아갈 의사가 특정 과를 선택하는 것은 돈도 좋고, 대우도 좋고,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 과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특정과, 인기과가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과라고 해서, 그 부분을 "사명감이 없다,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망각했다, 돈만 밝힌다"는 등으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회 구조적인 프레임 안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지향하는 존재이니깐요.

 추가로 설명하자면, 현재 대부분의 인기과는 금전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응급이 없기 때문에, 의료 소송이라는 측면에서 더 안전하기까지 합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 100명에게 현재 직장보다 한 달에 500만 원 정도 더 주는데도, 주말이나 밤에 특근이나 야근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주겠다고 하면, 적어도 99명 모두 직장을 바꿀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과연 이 질문에 "그래도 나는 안 바꾼다"고 대답하실 정도로 자유로우신가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이 질문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현재 나타나는 의료 현상은, 결코 단시일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국민과 정부의 인식 변화, 그리고 의사의 수급 조절, 진료 과별로 얽혀 있는 실타래 등 풀어야 하는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딱히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 또한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세대 간, 계층 간, 그리고 정부와 의료인 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해야 할 사안인 것만큼은 사실입니다.[각주:5]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생명을 살리는 치료일수록 값을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끔, 수가 자체를 낮게 책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없다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생명을 치료해주었으니, 비싼 값을 받아야 할까요? 


저는 오늘도 따끈따끈한 베스트 셀러를 사기 위해서 amazon.com에 들러서 책을 사고, 아이들을 위해서 월마트에 들러서 두 손 가득 장난감 레고를 삽니다. 여자들은 조금 더 예뻐지기 위해서 브랜드 화장품을 사고, 남자들이 조금 더 깔끔해 보이기 위해 삼중 날 면도기를 고르는 것은 일상적입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살 때, 가격에 대한 고민을 대부분 합니다. 비싸니깐 나중에 살까? 비싸니깐 필요 없어. 싸니깐 사자. 등등..하지만, 이런 재화들은 따지고 보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은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필수적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1. " 목숨값의 역설"이라는 용어가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 용어는 제가 글을 쓰기 위해서 만든 용어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되는 "목숨값의 역설"은 "생명과 직결될 수록 치료 비용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라는 정의를 따릅니다. 2014.1.29 [본문으로]
  2.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고용주가 훨씬 더 많이 냅니다. [본문으로]
  3. 참고로, 저의 경우에는 한달에 보험료로 10불(만원) 정도 냅니다 [본문으로]
  4.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는 연구 보고는 없습니다. 다만, 포퓰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당장 의료비가 싸면, 정치인의 인기는 높아지는 것을 보면,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본문으로]
  5.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미국에서 연구를 주로 하는 의사이기 때문에, 한국의 "의료 행위 수가"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본문으로]

대선에 나온 강지원 후보자의 부인이라기 보다는 김영란 전 권익 위원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영란 위원장을 잘 표현한 이야기는 바로 이 것이다.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서 남편이 대선 출마를 하자마자,

권익위원장 자리를 사임한 사람.


사표가 수리되기 전까지는 공직의 자리이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선거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


김영란. 이 사람을 본다면, 원칙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사람 같다.

특히, 2012년 8월 16일 입법 예고한 부정청탁 금지 및 이해충돌 방지 법안(소위 말하는 김영란 법)을 발의한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잠시 이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대가성"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항상 뇌물 비슷한 것(향응이나, 소위 말하는 용돈, 차도 포함)을 받은 공직자들이 "대가성"이 없다면서 대가성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돈은 돈대로 받을 수 있지만, 대가성이 없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

얼핏 본다면, 한편으로 말이 되긴 된다.

준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당신이 좋아서 돈을 선물했으니깐, 그냥 받아서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쓰세요. 부담은 가지실 필요가 전혀 없어요"

받는 사람 입장에서

"아이쿠~ 이 사람이 나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구만 ^^ 돈은 사실 도움은 되니깐, 받아 두지 모. 내가 공직자라서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돈을 주는 거니깐..일이랑은 큰 상관이 없을 테니깐..."

라고 순진하게(?) 생각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세상에 대가 없는 돈은 없으며,

일방적으로 주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밖에 없다고..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을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돈이 아니라도,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고급 물품이라면, 그냥 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리고 돈이 많고 성공해서, 그런 것을 주는 사람일수록, "그런 것"이 가지는 의미를 더 잘 안다. 지금 당장은 효과를 거두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뿌린 것을 거둘 수 있다는 것" 쯤은, 그 성공을 위해 달려온 시간동안 축적된 경험의 단편일 뿐일 것이다.

기존에 있었던 공직자 윤리법에서는 대가성이 없는 선물은 받아도 되는 것처럼 , 추상적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해 두었다. 일종의 윤리 강령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윤리 강령으로 된 그것을 조금 더 명확히 하자는 것이 바로 김영란 법의 핵심이다.
(국회에서 계류되고 넘어가는 동안, 여러가지가 바뀌긴 했지만..)

공직자가 된 이상, 그 개인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니며, 대가가 있든 없든 공직자가 금품을 받으면 처벌 가능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어찌 보면 씁쓸하기도 하다. 공직자가 "청렴결백"해야 한다는 것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강조된 것인데, 그 것을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 씁쓸하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금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청렴함을 무조건 전제하라고도 할 수 없다.


다만, 그 공직이라는 자리가 줄 수 있는 "함정"을 제도로서 보완하고 청렴한 시스템[각주:1]을 마련하는 것 역시 점차 복잡하고 다양한 개인들이 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1. 사람이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그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법률이 널리 퍼져서, 다시금 윤리의식이 회복되면 좋겠다. [본문으로]




미국은 자유로운 나라다. 그리고 자본주의 특히 사람을 고용하고, 유인하는데, 돈이라는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 어느 나라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긴다. 실제로 미국에서 많이 행해지는 봉사활동이나 기부금도 얼핏보면 돈이랑 큰 상관없이 자아실현을 위해서 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자본을 모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의대를 졸업한 남자라면, 현재, 군의관을 의무적으로 3년간 가게 된다. 공보의나 전문 연구요원으로 가는 경우도 물론 없지 않지만(다른 군대에 대한 옵션 글을 보고 싶으신 분은 링크로, 의대생 혹은 의사로 선택할 수 있는 국방의 의무 옵션), 대부분은 군의관을 가는 것이 사실이다. 의전원으로 전환된 시기 동안에는 미리 사병으로 군을 갔다온 사람이 많아서 한동안 군의관 요원이 부족해서 국방의전원을 설립하니 마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군의관 수급이라는 측면에서 국방의 의무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그에 반해 모든 군의관이 원칙적으로 "고용"된다. 의무감으로 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에 따르는 유인책은 분명히 존재한다. 오늘은 그 유인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미국 의대는 학비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4년 본과 기간동안 평균적으로 20-25만불 이 학비로 이용되고 거기에 생활비가 더해진다. 대략 의대를 졸업하는데 4억정도 소요된다는 것이 여기 의대생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상 제일 비싼 학비를 내는 동네가 바로 의대인 셈이다. 여하튼, 미국 일반 대학의 학비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의대는 그 어느 동네보다 금액 부담이 많은 것 같고, 학생들을 돈으로 무언가 꼬시기 쉬운 동네인 것은 사실이다. 장학금으로 괜찮은 학생을 꼬시는 것(?)부터 시작해서...군대 조차도 돈으로 꼬신다.


물론, 졸업하고 나서 그에 상응하는 리턴을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니, 들어가는 것이 어디냐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등록금을 먼저 학교에 내고 다니는 것과는 달리(실제로 우리 나라도 학자금 대출이 있기는 하다만), 미국에서는 의대를 다니는 동안 학비는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이용한다.


일부 장학금을 받거나 외부 펀드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자가 싼 학자금 대출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한다. 그리고 학부과정도 그렇게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사실상 의대를 졸업하고  강남 아파트 전세금(6-8억정도)을 빚으로 안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학생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사실을 아는 미국 군대 또한 가만히 있을리 없다.



돈으로 살살 의대생들을 유인(?)(이라고 쓰고 꼬신다 라고 말한다)한다.


일단, 의대에 들어와서 1학년 때 혹은 그 이전에 지원을 하면, 학비와 생활비가 지원된다. 계급은 second lieutenant으로 시작한다. 의대 다니는 동안에는 우리의 ROTC 처럼 1년 동안 6주 군 훈련을 받으러 가면 된다. 그 외에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



이미지에서 나오듯이, 광고 한 번 정말 멋지게 잘 만들었다. ^^ 자꾸 읽다 보면 정말 군대에 가고 싶어질 정도다. 어찌나 포장을 잘 하는지. 기본적으로 학비가 면제되고, 생활비로 한달에 2000불(220만원 정도) 주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Captain으로 진급해서 일선에서 의사로 일을 하게 된다.


재미있게도 모든 과정을 설명할 때 돈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학교 다니는 동안 학비로 얼마를 지원해주고, 생활비를 얼마 준다. 그리고 진급하게 되면 얼마를 더 주게 되고, 하나의 자격을 획득하고 근속을 하면 할 수록 돈을 더 준다는 식이다. 거창한 사명감이나, 애국심에는 호소하지 않는다.


물론, 서로 win-win하기 위해서 최신식 군병원에 대한 소개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쓰고 이라고 읽는다)가 주를 이룬다. 우리와는 사뭇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2명의 전직 미국 군의관을 알고 있다. 한 분은 본과 4학년 때 실습으로 미군부대에 갔을 때 알게 된 분인데, 여자고 흑인이였다. 아직까지도 종종 이메일을 하는데 현재는 Iowa에서 Clinic을 하고 있다. Brown 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이 되었는데, 왜 군의관이 되었냐고 질문은 하니깐, "너무 좋은 scholarship을 받아서"라고 이유를 말해 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군의관으로 한국에 파병오게 되면 "pay를 조금 더 받는 점"이 한국에 오게 된 계기라고도 이야기 해 주었었다.


자신이 학교 다니는 동안 학비 지원을 받았고, 그에 상응해서 당연히 해야할 일인데, 좋은 기회가 있어서 한국에 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 많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면서 아주 만족한다고 이야기 하였다. 아울러, 전혀 돈에 대한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돈으로 받는 것인데,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고.


또 한 명은 현재 MD anderson에 있는 병리학 의사이다. 암 조직 병리에서 유명한 교수님이신데, 우연히 한국에 오셨을 때, 한국 소개와 관광 통역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는데, 남미 출신이신 분이셨다. 그 당시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군의관을 하면서 병리학 Residency를 하게되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당시 군의관을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아주 잘 한 일이였다고 하셨다. 많은 병리 케이스를 접할 수 있었고, 그 바탕으로 아카데믹 연구를 할 수 있었긴 때문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커리어이긴 하지만, 두 명의 전직 군의관과의 대화는 미국의 커리어 유연성을 볼 수 있는 간접적인 경험이 되었었다. 실제로 미국이란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단순히 의사만 고용하는 것이 아니고, 치과의사에게도 해당하는 일이다. ^^ 추가로 수의사나, 안경사, 임상 심리사도 medical army team에 지원할 수는 있는 것 같다. scholarship에서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럼, 제일 중요한 duty 혹은 obligation은 어떻게 될까? 의사는 최소 2년이고, 치과를 포함한 다른 과들은 3년인데,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상황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4년을 지원받으면 4년간 복무를 하면 되는데, 만약 레지던트를 하게 되면 그 동안은 duty가 delay이 되지만, 더 늘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인턴을 마치고 와서 복무할 수도 있고, 의대를 졸업하자 마자 복무할 수도 있는데, 대체로 지원받는 기간 만큼 일하면 되는 셈이다. 단, training은 군병원에서만 가능하다.


우리 나라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국방부에서 홍보도 크게 안하는 것 같고 간다고 하는 사람도 적은 것처럼 보인다. 그냥 학교에 공문 하나만 달랑 보내는 것이 끝. 그에 반해, 여기 미국은 서로가 서로 win-win하고자 하는 느낌이 강하다.(여기 프로그램도 역시 군인은 군인이겠지만) 우리 나라도 장기 복무 과정이 있긴 하던데, 뭔가 문제가 있는 듯 한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


여담이지만, MDPhD 조차도 돈으로 꼬신다...사실상, 금전적인 이유가 MDPhD 제도의 부흥을 이끌어 내는데 가장 큰 몫을 했다고 보는 시야가 많다. 물론, 1950년대 이후에 있었던 징병 제도 대신 가는 MDPhD는 별개로 해야 하겠지만... 미국에서도 국방의 의무를 대치하는 MDPhD연구원 제도는 아주 큰 성공을 했다.


진보 성향, 소수 의견에 대한 관심.


오늘 우연히 중앙 일보 토요 섹션을 보다가 김영란 전 권익 위원장 인터뷰가 있어서 보다가 여러가지 생각이 나서 글을 써 본다.

(사진 - 연합뉴스)
클릭하시면 김영란 전 위원장의 위키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여성 최초 권익 위원장. 부산 최초 여성 판사.

사실 김영란 선생님에 대해서는 인터뷰를 읽기 전에는 전혀 몰랐었다. 의료법을 제외하고는, 거의 법조계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 중간에 이 분의 말씀과 생활에 많은 공감이 갔던 것은 사실이다.

모든 걸 내가 최초로 한 건 아니다. 다행히 선배들이 몇 분 계셔서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여자들 시켜봤더니 잘 못한다'는 소리를 듣게 해선 안 되겠다 싶어 정말 열심히 했다.

어쨌든 소수자 그룹의 첫 무엇이 되면
앞으로 자기가 속한 그룹이 사회에 뿌리내리는 것 자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더라.

처신도 조심해야 하고,
그 동안 (권력을) 누려왔던 다수자의 눈 밖에 나지도 않아야 하고...

그렇다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의미도 무시할 수 없었다. "

실제로 내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나보다 앞서 나간 선배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면, 시행착오는 온전히 내 몫이고, 진행은 더딜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목적 자체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시행착오를 줄이게끔 도와주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의과학 분야는
태생적으로 선행 연구들의 결과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 정말 많다. 어떤 분야의 과학이든지간에 선행 연구가 없다면 시행착오를 많이 거칠 수밖에 없고, 대업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뉴턴 역시 자신의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거인들의 어깨에 서서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사실 따지고 본다면 처음이라는 것이 처음이 아닌 셈이긴 하지만... 의과학 연구에는 항상 남과는 다른 창의적인 생각, 실험이라는 처음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이 되는 것은 항상 쉽지 않다.
 
기존의 선입견이나 자신과는 다른 시야를 온 몸으로 받아 들여야 하고(방어해야), 남이 걷지 않는 시행착오를 오롯히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후배나 후발 주자는 선발 주자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보완만 하면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노력으로 선행 주자를 따라 갈 수 있다. 그래서 처음이 위대한 것이고, 처음만이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 있다. 


아울러 처음은 언제나 책임과 부담감이 있다. 특히 "자기가 속한 그룹이 사회에 뿌리내리는 것 자체를 책임져야한다는 부담감"... 참으로 공감가는 말이다. 처음이라기 보다는 소수자 그룹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신의 그룹을 일반인에게 소개하고, 일반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 주는 것. 그래서 소수를 다수로 변화시키거나 최소한 다수가 인지한 소수가 되는 것. 그것은 소수자 그룹의 첫 사람들이 해야할 숙명과 같은 일일 것이다.


기초 의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임상 의학을 진로로 선택하는 대부분의 의대생을 감안할 때, 필연적으로 소수자 집단일 수밖에 없다. 전세계 어느 의대를 간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명제인 것이 사실이다. 사회에서 인식하는 시선 역시 의과 대학을 "진료를 보는 의사 양성소"로 생각하지, "의과학 연구자를 양성하는 집단"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대생을 넘어, 의사라는 집단으로 확장을 해도 연구를 하는 의사는 진료를 하는 의사 집단에 비하면 항상 소수 집단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기초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항상 소수다. 매년 학교마다 1-2명씩 나오면 그나마 시행착오의 경험을 전수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드물다. 대부분의 의대를 나온 기초 의학자는 숙명적으로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고, 항상 소수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혹은 대다수는 그 시행착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 간다. 아울러 우리가 속한 그룹이 사회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한다. 다수가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리려고 노력을 하고자 한다. 그렇게 조금씩 알리다 보면, 의대가 의사를 양성하지만, 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를 양성하는 공간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인식이 확대될 것이다. 아울러 그것들이 축적되면 그 길을 가는 후배들이 거치는 시행착오 역시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의전원으로 들어와서 접한 의대생활...

첫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학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의학공부인 골학해부학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었죠.

제가 아는 분 중에 예과 2년 마친 후 골학 시작하고 힘들어서 약대로 가신 분이 계셨는데 합격 소식 들리자마자 골학에 대해 엄청나게 압박을 주셨었어요...


역시...  듣던대로 명불허전이였습니다. 

그렇게 이해할 시간도, 외울 시간도 없이 머리속에 넣는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였죠.

마치 온갖 산해진미를 씹지도 않고, 삼키지도 않고... 바로 Stomach으로 쑤셔 넣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그런 느낌... 익숙해서 만성이 되었지만... ^^;;;


학교마다 골학을 공부하는 방법이 다른데 우리 학교는 학생회에 주관 하에 모든 신입생이 골학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1년 선배가 튜터가 되어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진행 되고 있습니다.


골학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본과 수업이 시작됩니다.


1학년 때는 대부분 기초 과목인 해부학, 태생학, 생화학, 생리학, 약리학, 면역학, 병리학과 미생물학 등을 배우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대생이라면 느끼셨겠지만... 본과 1~2학년이란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고, 매 과목마다 산처럼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1학년 수업의 꽃인 해부학... 이 꽃밭을 무사히 지나치기 위해서 필기 시험에 더불어...

 

심장이 쫄깃해지는 '땡시'가 있습니다. 


가운에 여분 볼펜 필수! 빨리 글씨를 쓰는 능력까지 평가 받는 시간이죠. 매일 반복되는 카데바 해부 실습[각주:1]에 수업에 공부까지... 1년 중 가장 빡빡한 수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나마 골학과 해부학은 보이는 것,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저로선 재미있는 과목이였습니다. 


그런데 해부학이 끝나고 생화학에 들어가니 정말 갈피를 못 잡겠더군요...


의학과에서 흔히 전공자라 일컫는 생물이나 화학 전공 관련 학부 출신이 아니었던 저는 새로운 공부에 Sudden attack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부 때 듣던 수업이 수학, 물리, 프로그래밍과 신호처리 관련 과목이 대다수 였는데, 생화학에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단위 까지 알아야 했고, 그렇게 작은 세포 안에 그렇게 많은 Signal이 있다는 사실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학부 때 1년에 걸쳐 했다던 수업을 한달 안에 끝내니 해부학 때 쑤셔넣은 배움의 체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힘들더군요. 해부학 끝나고 선배들이 산 넘어 똥밭이라고 하더니 선배들이 했던 말들이 여실히 와 닿았습니다. 산은 힘들고.. 똥은 더럽듯...  전부 힘든 상황이지만 힘든 포인트가 조금씩 다르더군요.제일 충격이였던 건...


저보다 공부를 훨씬 안 하던 생명공학부 출신 친구가 저보다 더 빨리 습득하고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결국 전공한 친구에게 교수님 강의를 한장 한장 넘기며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며 공부를 해 나갔습니다.

 <http://i3.kym-cdn.com/photos/images/original/000/250/567/0e6.jpg>


그 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했던 말이 떠 오르는군요
"너무 조바심 내지마. 그래도 마치고 나면.. 의사가 될 수 있잖아." 라며... 서로를 위로했었던 말... ^^

근데 그 땐 공부를 할 수록 그 의사라는 직업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시간이였죠...

전문가가 나와서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시간 관리를 잘 하는 방법을 예전엔 흘려 들었었는데 그 흔히들 말하는  공부 방법이란 것도 본과 1학년 들어와서야 적용해 볼만큼 저에겐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아웅다웅 하였던 시간이였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겐 공부만큼이나 Sudden attack 이였던 학부때와는 다른 학교의 분위기!!!!

모두 함께 가자
!!!
 라는 느낌의 의대 분위기는 저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올라가기위한 노력은 아름다웠으나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었던 저에겐 모두 함께라는 미션은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비전공자라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인식까지 박혀버렸는데 갈수록 그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 느낌인데다가 모두 같이 가자고 하며, 개인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들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저 슬로건 덕분에 한 해 한 해 올라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절대 혼자할 수 없고 , 같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 의대공부인 듯 합니다. 1학년은 나를 중심으로 일정을 짜는 것이아니라 학교의 일정에 나의 생활을 맞춘 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자고 마음 먹는 것이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1학년도 지나고 나니  뭐 그렇게 했었나 후회도 되고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도 남고 그렇네요.

그리고 지나고 보니 느껴지는 것은 학부 전공과 의대 성적은 상관관계가 크게 없다는 것! 학부 뿐 만아니라... 전적대 또한 학점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 모두 말하죠... 의대오면 머리는 비슷하고 1등과 꼴찌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쌓이고 쌓이면... 큰것 같습니다만...^^;;)

비전공자들... 겁먹지 마십시오~!!! 지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체력과 지구력만이 1학년을 잘 버틸수 있는 Key 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알아 보기 위한 사이트! 

 

http://www.med-ed.virginia.edu/specialties/Home.cfm 를 소개합니다.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100가지 이상의 질문들로  자신에게 맞는 과의 리스트를 정리 줍니다.

 
공부를 시작하고,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을 받다보면 나의 상황이나 사람들의 잣대에 휩쓸려 가기 쉬운데 의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적성에 맞는 과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벌써, 기나긴 의대 생활을 마치고, 인턴을 하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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