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환경 조건이 한 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무려 60년 동안 연구한 일본 그룹이 있네요.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거긴 합니다만, 60년 동안 하나의 연구를 위해서 꾸준히 달려온 끈기를 본받을만 합니다.
심지어,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PI는 2007년에 사망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가 끝까지 갈 수 있는 일본의 분위기가 참 부럽기도 하네요.
결과를 잠시 소개하자면, 초파리를 60년 동안 어두운 곳에서 키우고, 그 과정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한 어찌보면 "단순한" 실험입니다.
다만, 1500세대를 넘어 키웠다는 것이 놀랄만한 사실이지요.
그 결과, 일반 종들에 비해서 냄새에 더 민감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휠씬 더 짝짓기에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히 예상 가능한 일인데, 과학이나 의학은 이런 "당연하게 예상 가능한" 일들이 "진짜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냥 되더라~ 카더라~ 되지 않겠나~ 하면서 우겨서는 안되요. 꽝이 나거나 예상과는 다른 경우도 엄청 많거든요.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본문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이런 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초파리들의 DNA를 축적해서, 어떤 변화의 과정으로 거쳐가는지가 나왔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genetic population에서 한개의 external stimulus가 genetic variation을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를 각 세대별로 구성하면 아주 재미있는 temporal genetics가 될 것 같은데, 그냥 단순히 결과만 비교해서 아쉬움이 남기는 하네요.
제 주변에 계신 한 분의 지도 교수님께서 아주 큰 연구비를 운영하시다가 갑자기 작고하셨는데, 그 이후 그 사업단이 산산히 부서지고, 사업이 끝나버리셔서 안타까워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결과를 잘 이끌어 내면서 랜딩할 수 있는
일본의 문화가 부럽기는 하네요. 하지만, 또 우리는 우리만의 장점이 있을테니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이런 실험한다고 하면, 음.. 너무 깁니다. 라고 뺀치 먹지 않을까요?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있는 학자들 역시 정규직이 아니라서 걱정은 하는 것 같네요. 기사 말미에 프로젝트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는 건..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을 실어주는 언론도 문제이고, 이런 것을 "경험"이라는 허울아래 주장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물론, 저는 이 책을 읽지도 않았고, 정형외과 전문의도 아닙니다. 하지만, 디스크나 척추관 협착증이라는 질환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에는 아주 동의할 수가 없네요.
과연 이런 처사가 작금의 현대 의학 지식이 없이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집단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분이 "의사"이고 "전문의"이시네요.
대놓고 노이즈 마케팅하는 건데... 그리고 자신의 책을 읽지 않으면 상대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 하는데.. 저는 책을 읽을 가치조차도 느끼지 못하겠네요. 물론 언론이 이 부분을 과대 포장해서 "논란"을 일으키게끔 글을 쓰는 것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황하게 들리네요.
이제껏, 모두가 대동단결해서 의료 기기 문제에 대해서 비판했던 이유가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황당한" 주장이 일부라도 계속되고, 의학이 가지는 공신력과 근거를 부정하면서 정당한 의학 근거(대규모 임상 시험과 기전에 근거한 현대 의학)없이 자기 주장만 많아지는 상황은 흡사 허준 시절을 보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하기사 의사가 많으니 일부 아웃라이어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긴 합니다. 그게 좋은 뜻의 아웃라이어이든 나쁜 뜻의 아웃라이어이든.
분명히 이 분이 말하는 부분에 근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주 좋게 본다면, 특히 무작정 허리 아픈 것을 "디스크"라고 생각하는 환자나 의사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겠지요. 하지만, 명확한 방사통, 그리고 MRI를 통해서 눌리는 신경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환자들을 방치한다는 것은, 직무 유기이며, 나를 믿고 온 환자에 대한 배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결국 일반인들, 그리고 언론이 보고 싶어 하는 "의사들은 과잉 진료, 그리고 돈벌이에 급급해"라는 프레임에 걸맞는(?)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기존 틀을 바꾸는 명의야~"라는 인터뷰인 셈인데... 좀 씁쓸하긴 하네요.
정형외과, 그리고 신경외과 선생님들, 그리고 다른 의사 선생님들,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 "데이터 기생충" 사건으로 체면을 구기기는 했지만, New English Journal of Medicine(NEJM)은 의학의 꽃이자, 의학 문화(?)를 선도하는 최고의 잡지이죠. 최신 의료 지견뿐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 의료 방법을 검증된 방법으로 제시하는 의학의 "끝판 대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적할만한 또 다른 저널로는 The Lancet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NEJM의 위엄과 권위는 독보적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EJM이 이순신 장군처럼, 하나의 대규모 스터디를 한 논문으로 "나를 따르라"하면, 대부분 1-2년 내로 교과서의 내용이 바뀌고, 치료 방법이 바뀌지요. 물론, 추가적인 검증 역시 지속됩니다.
개인적으로 NEJM을 알게된 계기는 조금 특이한데요... 제가 접한 처음 NEJM은 의대 본과 다닐 때, 교수님이나, 선배들이 이야기하거나, 논문으로 접한 것이 아니라, 미드 ER의 1시즌 에피소드 1편에서부터 유래합니다.
미드 ER의 극중에서 흑인 외과 레지던트 2년차인 닥터 벤튼이 당직을 서면서, 저널 리뷰랑 최신 지견을 이야기하는데, 이 때,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을 언급했었죠. 예과생 때, 재미로 미드를 봤는데, "저게 무슨 용어지?" 하면서 저 단어를 찾아 봤던 기억이 납니다.
부끄럽지만, 처음에는 저게 저널 이름인 줄도 몰랐어요. 사전을 찾아보니, "New England"가 우리의 경상도나 전라도처럼, 미국의 지명이라고 나와서, 아 뭐 그냥 과학 동아 같은 잡지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죠. ER을 두번째 보고서야, 아주 권위높은 논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죠. 당시만 해도, 모든 의사들이 평생 한 번이라도 내고 싶어하는.. 후덜덜하게 좋은(?) 논문인줄은 몰랐죠. 그냥 그런 갑다 했었죠. 꼬꼬마 예과생이 뭘 알았겠습니까? ㅎㅎㅎ
여하튼, 오늘 NEJM에서 뉴스 레터가 날라와서, 알게된 사실인데, 2015년도에 NEJM에 출판된 아주 중요한 논문들을 모아서 공짜로(?) 보여주는 행사를 하고 있네요.
Stroke, HIV infection, infants peanut allergy, CPR, HCV 등등, 의학의 굵직굵직한 주제들의 최신 지견과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Editorial까지 있으니, 심심하신(?)분들이나, 최신 지견을 아시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세요~
간소한 입력이랑 가입하는 절차가 있는데, 스팸이 날라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깐(물론 설정에 따라 다릅니다), 가입하시고 최신 소식을 접해 보세요.
전원주택은 얼핏 보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도심의 번잡함을 뒤로 하고, 자연과 벗삼아 사는 인생.
내가 가꾸어 논 유기농 채소와 푸른 잔디를 바라보면서, 가끔 친구들을 불러서 바베큐도 같이 먹고, 진도개와 오리,닭이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가족들이랑 벽난로로 따뜻하게 지내면서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풍경.
이게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원주택"의 삶입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죠. 링크로 연결된 블로그 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유기농 채소를 키우기 위해 전업 농부보다 더 힘든 농사를 지어야 하고, 장마철 푸른 잔디는 자기가 마치 벼인양 쑥쑥 자라나니, 일주일 관리를 못하면, 숲이 되어버리고, 놀러온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과는 별개인 뒷정리 시간.
진도개는 사료를 엄청 많이 먹어서 골치아프고, 오리와 닭은 청결하지 못해서 남에게 주는 그런 전원 주택 생활.
그리고, 위에 적힌 모든 "노동"을 본인 스스로 해야하기에 결과적으로 가족과의 시간은 오순도순이라기 보다는 노동에 치여서 지친 하루를 겨우 달래는 수준...
우리가 꿈꾸는 전원주택의 삶은, 각자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갔던 팬션의 경험과 겹쳐지지만, 실제로 전원주택의 삶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른 "실재"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인색합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의사들의 생활은 윤택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때로는 돌팔이처럼 질문 몇마디 안 물어 보고 대충하는 것 같은데, 결국 환자를 치료하고... 그렇게 보면, 의사들이 아주 쉽게 돈을 버는 것 같습니다. 그깟 골밀도 측정하는 거조차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니깐요.
하지만, 저런 질문을 물어보기 위해서 본1부터 며칠을 밤새면서 시험준비를 하고, 인턴 때 환자를 부여잡으면서 시름하고, 레지던트 때, 윗사람으로부터 온갖 지적과 환자들로부터 폭언(?)을 들어가면서 보낸 인고의 시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현재의 모습에만,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의사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과학자 역시 그러합니다.
언론에 언급될만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 어떤 대학원생은 며칠 밤낮을 새워가면서 실험을 하고, 교수님으로부터, 리뷰어로부터 온갖 지적을 감내하면서 만든 것이 하나의 논문인데, 사람들은 그 논문이 가져다 주는 영광만을 바라봅니다.
행여라도 앓는 소리 한마디 할라치면, 가진 자의 여유라고 치부되기 마련이라서,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럽습니다.
사람들은 잠시 동안 자신이 접한 의사의 진료 시간, 그리고 과학자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떡"에게만 신경을 씁니다. 마치 팬션의 경험이 전원주택의 모습인양 착각하면 살 듯이, 그 이미지를 통해서, 그 안에 있었던 노력들을 때론 애써 무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사나, 과학자나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그자리에 갈 수 있었는지, 어떤 과정을 겪어서 그런 것인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공감하는 것이고, 그래서 더 값지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때로는 어떤 한 직업의 "전원 주택 이미지"보다, 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알릴 필요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비록 그것이 환자 보호자에게 "이X, 저X, 18X 소리"를 듣는 것이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리뷰어에게 "수도 없이 까이는 리젝션"일지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서 실제로는 그것이 그렇게 환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원주택 생활이 주는 즐거움이 분명 있지만, 그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다양한 출판사들이 있고, 일부 어처구니 없는 기사들을 읽기도 한 김에, 논문과 얽혀 섥혀 있는 이야기 썰을 하나 풀어볼께요.
일반적인 학술 논문은 이런 형태를 통해서 흘러 갑니다.
1. 정부에서 과제 신청을 통해서 연구비를 받는다.(연구비 수주) 2. 연구비를 통해서 신나게... 혹은 꾸역꾸역...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 활동) 3. 데이터가 좀 쌓이고, 무언가 보고할 만한 밑밥(?)이 생긴다. (학술적 발견) 4. 그 밑밥을 내 줄 출판사를 알아 본다. (취미 생활(???)) 5. 출판사에 그 밑밥을 던져보고, 덥썩(?) 무는지 알아본다. (서브미션) 6. 출판사가 밑밥을 물면, 리비전과 여러 서신 교환(혹은 쥐어짜기)을 통해서, 특정 저널에 게재 허가가 난다.(억셉!!! 오예!!!!!!) 7. 일부 편집을 거쳐, 출판사가 발행하는 특정 저널에 게재가 되면, 논문을 쓴 과학자들이, "게재료"를 내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논문이 실리게 된다. (출판) 8. 그 실린 논문을 통해서, 다시금 1번 과제를 "무한" 반복한다. (노예 -.-;;;)
가 될 겁니다.
자, 그런 과정에서 이제, 출판사와 연구비를 부담한 정부, 그리고 논문을 쓴 사람 이 세 사람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번째, 출판사. 논문을 게재하는데 민간 기업인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노동력 혹은 "돈"이 필요합니다. 논문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논문의 수준도 유지해야하고, 광고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높은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좋은 에디터와 학술 전문가들을 고용하기도 해야 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 논문이 아주 유명하다면, 끊임없이 논문을 쓰고 싶어하는 과학자 노예(?)들이 존재하고, 논문에 광고를 실어서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 정부 혹은 연구비 제공 기관. 연구비를 제공한 기관은 기본적으로 연구비가 제대로 쓰여졌는지. 그리고 이 연구비를 통해서 과학 지식의 발전, 혹은 소기의 기대성과를 얻었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연구자에게 다양한 심사나 계획서를 요구하기도 하고, 가끔은 쓸데없다(?)는 평가를 듣는 허례허식뿐인 보고서를 연구자들(또 다른 노예?)에게 쥐어짜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돈을 주는 물주이기 때문에, 자신의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를 알고 싶어하고, 이 부분은 대부분, 수준 높은 저널에 결과가 보고되거나, 돈이 되는 특허를 만들었는지 혹은 산업화가 되었는지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번째, 논문을 쓴 사람 혹은 과학자. 과학자는 필연적으로 연구비를 수주해서, 그를 통해 연구를 한 후에, 그 연구를 어떤 형태로든지, 일반에게 공개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 언급한 "무한" 반복 노예(?) 행위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연구를 논문이나 특허의 형태로 보고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논문이 수준 높은 저널에 실리기를 바라고, 이는 결국 후속 논문을 위한 연구비를 신청할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연구를 잘하고, 연구비를 잘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연구를 마무리 잘 해서, 수준 높은 저널에 내어서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세 주체는, 연구라는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해 관계에 얽혀져 있고, 이는 세번째 주체인 과학자들의 경쟁으로 인해서, 더 복잡해 집니다. 수준 높은 저널에 출판될 수 있는 논문 수는 한정되어 있으며, 과학자들에게 나누어줄수 있는 연구비 역시 제한적이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조금 더 가치있음을 은연중에 수준 높은 저널을 통해서 자랑(?)하는 것이지요.
이 세 주체의 상황에서 저작권이라는 기본 개념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작권은 어떤 지적 생산물을 만든 사람에게, 그 이득을 돌려주게끔 만드는 권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컨대, 음악을 만든다고 했을 때, 음악을 작곡한 사람, 그리고 작사한 사람, 그리고 그 음악을 부른 사람(이건 정확하게 "실시권"이라고 해야 맞지만, 편의상 그냥 넘어 갑시다!!) 등등, 이 사람들이 곡을 만들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 음악 하나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그 음악을 좋아하고, 구입하면서 발생하는 이득의 일부를 돌려주는 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음악 유통을 하면서 저작권 수입보다 더 큰 이득을 얻는 집단(멜..머시기)도 존재하고, 뭐.. 착취니 뭐니.. 안 좋은 일도 발생합니다만... 여하튼, 이런 저작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새로운 지적 생산물이 나타날 유인 동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열심히 만들어 봐도 나한테 돌아오는 게 없는 상황인데, 굳이 애써 새로운 걸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공산당이 싫어요!!!!!)
하지만, 이런 저작권의 개념은 과학으로 오게 되면, 위 세가지 주체의 이해관계 그리고 관행으로 인해서, 살짝 다른 개념으로 바뀝니다. 물론, 표절 이런 것도 여기에 끼여들 여지가 생기게 되요. 하지만, 오늘은 좀 가볍게 저작권만 다루어 봅쉬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연구자들"은 "정부"의 돈을 받아서 민간 단체인 "출판사"에 연구 내용을 보고해요. 그리고 이때 출판이 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저작권을 "출판사"에 무상으로 "양도"합니다.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이거지요. 역시 제대로된 노예~ !!!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 출판 과정에서 게재료라는 이름으로 돈은 내기까지 합니다. 오홍~ 연구 결과도 주고 그거 내달라고 돈도 주고, 저작권도 양도하고~ 오~ 일타 삼피!!!!
근데, "이 저작권을 내는 것에 대해서, 거부하는 경우가 있느냐?" 라고 한다면,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아요. "이게 올바른 것이냐?" 라고 한다면, 여러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논문이 가지고 있는 공공성에 근거해서, 자신의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개념도 들어가 있는 셈이에요.
물론, 안타깝게도, 이 저작권을 출판사에 양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 양도된 저작권을 통해서 돈을 벌어들이기도 하고, 구독권을 통해서 장사를 하기도 해요. 더 웃긴 상황은 이렇게 자신이 쓴 논문이라 할지라도, 그 저널을 돈을 주고 "구독"하고 있지 않으면, 볼 수도 없다는 사실이에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과학자가 어떻게 보면 호구이긴 해요~ "정주고 마음도 주고 사랑도 줬지만~ 이제는 남이 되어~~~~~... 아.. 죄송합니다..-.-ㅂ)
근데, 생각해 보면, 이런 관행에서 돈은 정부가 내고 있고, 연구자는 열심히 연구해서, 출판사에 연구 성과를 갖다 바치고...(?) 출판사는 그 연구와 양도된 저작권을 통해서 돈을 벌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여요. 실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인식해서 생겨난 개념이 바로 오픈 엑세스 운동이에요.
Open access 이건 출판권과 최신 과학 지식을 대중에게 공개하자. 뭐 이런 거창한 가치가 있는데, 따지고 보면, 공짜로 논문을 보게 하자~ 뭐 이런 거예요.
시중에 보인는 PLOS genetics, PLOS biology, PLOS computational biology, elife 등이 대표적인 오픈 엑세스 저널들이에요. 이 논문은 기본적으로 연구자들이 연구 논문을 보고한 경우에 충분히 좋으면. 연구 논문을 출판하고,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논문을 제공하고 있어요.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그 저작권 역시 대중에게 공개해서, 연구 결과를 통해서 장사하는 "출판사"들에게 대항하고자 만든 단체같은 새로운 "출판사"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하지만, 문제는 이런 오픈 엑세스 출판사 역시, 다양하게 돈이 든다는 사실이고, 이런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연구자들에게 일반 "출판사"들보다 더 많은 게재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이 논문을 돈 주고 구독하는 독자들이 없으니깐요. 사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도서관에 팔아먹는 구독료가 쏠쏠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오픈 엑세스에 논문을 내면, 일반 출판사 게재료보다 많게는 5배 정도를 내야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추가로, 위에 언급한 논문들은 아주 좋은 저널이지만, 이렇게 이득이 없는 집단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거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한,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어요. 그러다 보니깐, 처음에는 반짝하다가, 나중에 그 유명세를 달리 하는 경우도 많아져요.
그럼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하면, 이 오픈 엑세스 논문에 연구 결과를 보고했는데, 돈을 내 준 정부 입장에서는, 왜 제대로 된 논문에 싣지 않았냐고, 구박(?)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어요. 그러니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민간 출판사, 예컨대, 자연이(Nature), 과학이(Science), 세포놈(Cell) 같은 저널의 문을 다시금 두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요.
그러니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정된 재화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물주(?)와, 그 재화를 받고자, 그리고 자신이 연구하는 것을 높은 수준의 논문에 싣고자 하는 노예(?)들, 그리고 그 재화를 이용한 연구를 홍보하면서 돈을 벌고자 하는 땟놈(?)의 "놈놈놈" 관계 때문에, 어쩔수 없이 발생하고 있는 문제(?)인 셈이에요.
그러면, 단순하게 정부나, 일부 학회가 좋은 출판사(?)를 사거나, 운영하면 되지 않느냐 라는 답이 나올 수 있겠죠. 네.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민간 학술지 지원 행위(?)가 바로 그런 행위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예상하셨겠지만, 이런 학술지 혹은 학회 지원이 눈에 불을 켜면서 돈을 벌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민간 출판사에 비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리고, 이런 문제를 인식해서 최근에 막강 물주들, 독일의 막스 프랑크,미국의 하워드 휴지,그리고 영국의 웰컴 트러스트 이 세 기관이 합심해서 으쌰으쌰 만든 출판사가 eLife에요. 이 논문의 성과는 앞으로 조금 더 지켜봐야 겠지만, 새로운 리뷰 문화를 만들고 있는 등, 아직까지는 평이 아주 좋은 편이에요. 하지만, 이 안에서도 자연이, 과학이 세포놈을 선호하는 현상은 여전하다는 사실이 맹점이라면 맹점이에요.
이 문제는 너무나도 고착화되어서 쉽게 풀수가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에요. 논문을 만들어 내는 연구자의 저작권도 고려해 보아야할 문제고, 저 저작권을 통해서 이득을 벌어들이는 출판사에게 어느 정도 이득을 줘야하는지도 문제이고. 돈을 주는 정부나 기관 역시 어떤 연구가 좋은 연구인지를 단순히 논문으로 평가하지 않아야할 책무도 있는 셈이에요.
다만, 왜 돈은 내가 주는데, 출판사가 돈을 버냐? 내가 호구(?)냐? 하는 기관들이 많아져서, 최근에 이런 저작권 문제가 대두되고 있어요. 나에게 저작권을 돌려달라~~~~ 아울러, 연구 결과의 공공성을 많은 사람이 인지해서, 출판사의 논문 출판 전의 프리 프린트(pre-print)의 형태로 공개할 수 있는 사이트들(예컨대, NCBI Pubmed, ResearchGate 등) 생겨나서, 꼭 출판사의 논문이 아니더라도, 특정 펀드의 지원을 받는 연구자들의 논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효율성은 떨어지기 때문에, 논문의 접근도는 떨어져요.
여하튼, 이런 문제는 기본적으로 구조적인 해결책과 다양한 의논을 통한 강력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데, 과학을 열심히 하는 다양한 연구자들이 이런 부분에 신경쓰는 것이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에요.
의대를 나오면 인턴, 레지던트를 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때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뜩이나 적은 의국원, 혹은 전공의에서 한 사람이라도 휴가를 가게되면, 그 업무량은 인수 인계까지 합할 경우, 두배가 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휴가는 본인도 가게될 것이기 때문에, 쌤쌤(?)이 되지만, 과연 이런 일이 전공의 기간 동안 꾸준히 이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그 상황을 사회적인 가치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까요?
박민우 선생님이 최근에, 연세대 의대를 입학한 전병건 군의 상황을 보면서 만든 가상의 "픽션"이지만, 한 번 쯤은 생각해볼 글일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는 성공적인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개인의 피해를 감수할 만한 이타심 체계가 잡혀져 있는가... 이타심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이런 상황을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사회 시스템 문제라고 하지 않고, 개인 탓만 하는 현실은 아닌지.. 라는 고민을 던져 보면서 글을 공유해 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증상이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야 자신의 천형(天刑)이 선천성 근무력증임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병을 형벌로 생각하지 않고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생각했다. 근육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는 대신 생각을 많이 했다. 국어와 영어 같은 언어 사고 능력이 중요한 과목에서 그는 남들보다 단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수학은 가끔 긴 계산을 필요로 하기에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과목이었으나 그 또한 대부분의 계산을 암산으로 해냄으로써 극복했다.
그는 자신의 학교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고 최종적으로 명문대 의대에 합격함으로써 모든 세상의 주목과 축복을 받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어 자신의 질병의 원인을 찾고, 자신처럼 고통받는 이를 치료하고 싶다 말했다.
과연 그가 입학한 학교는 명문대가 맞았다. 단순히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놓은 학교가 아니었다. 이 학교에선 신체적 약자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과 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었고 그는 자신의 신체적 불편함 때문에 학업을 방해받는 일이 없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으레 이기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노력해본 적 없는 사람들의 질투와 편견이리라. 의과대학교수들뿐만 아니라 입학 동기, 선배, 후배들까지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동기들은 빠른 속도의 수업 내용을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는 그에게 필기 복사본을 구해다 줬다. 해부학, 조직학 실습에서도 동기들은 그를 도왔다. 그는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실습 시험을 무난히 치를 수 있었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진급하여 졸업을 앞두게 됐고 의사 고시를 준비하게 됐다.
여태까지 잘 해낸 그였지만 의사 고시엔 그의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잘 해낼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의사 고시엔 실기 시험이 있는데 그중 OSCE는 실제 환자 모형을 두고 처치를 해야하는 시험이었다. OSCE의 여러 항목이 완력과 정교한 손놀림을 필요로 했다. 예를 들어 심폐 소생술은 실제 흉부 압박을 5-6cm 깊이로 분당 100-120회 시행해야 했는데, 이것은 선천성 근무력증인 그가 결코 해낼 수 있는 술기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봉합술, 혈액 배양술 등도 자유롭지 못한 손놀림을 가진 그에게는 장벽이었다.
그가 속한 의대의 교수들은 회의를 열었고 한국 보건 의료인 국가시험원과 접촉했다. 학교가 입학 시켰으니 의사 고시도 마땅히 학교가 책임져 합격시켜야 한다는 이유였다. 국시원에 그의 특별한 사정을 알려 그에게만 특별히 물리적 힘이 필요하지 않은 항목들로만 출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시원도 출제위원들을 모았고 며칠을 토론했다. 한 사람에게만 시험 항목을 선별해 출제한다는 건 찬반이 어느 정도 엇갈린 일이었다. 하지만 국시원도 언론이 주목하는 그의 어떠한 상징성에 압박을 받았고 결국 그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항목만을 출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의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고 다시금 6년 만에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부터였을까, 그는 가끔씩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한 느낌을 등 뒤로 받아야 했다.
입학 때부터 그의 꿈은 재활의학과 의사였다. 간혹 주변에서 의사가 되어 겪는 신체적 피로와 한계는 학생 때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며 그냥 인턴을 하지 말고 기초의학으로 빠지는 게 어떠냐고 말했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이제까지 해냈는데 앞으로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그는 망가져갔다. 육체는 이미 굳어있었기에 정신이 망가져갔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병원은 학교와 다르게 이론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가야 하는 전쟁터였다. 내과 인턴을 돌 때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수십 개의 정맥혈 채혈, 동맥혈 채혈을 마쳐야 했는데 그에겐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가 하지 못한 몫은 고스란히 동료 인턴의 몫으로 넘어갔다. 그의 동료 P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에게 힘든 낯을 하나도 비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동료 L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L은 타교 출신이었고, 그와 어떠한 정신적 유대를 갖기도 전에 그의 일을 떠맡아야 했다. L은 대놓고 그에게 적의를 표하진 않았으나 마찬가지로 대놓고 살갑게 굴지도 않았다.
대놓고 그의 인턴 스케줄을 거부하는 과도 있었다. 몇몇 수술하는 과들은 애당초 우리 과 일을 도울 수 없으니 다른 인턴으로 스케줄을 바꿔달란 요청을 했다. 이건 하겠다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의 의지는 무시되고 스케줄은 조정됐다. 그가 빠진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는 다른 인턴들이 두 번씩 도는 것으로 결정됐다. 서서히 원망의 목소리가 병원에 깔리기 시작했다. 학생 동기들은 이타적이었으나 의사 동기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기적인 게 아니고 이타적이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쉬지 못하고 자지 못한 동기들은 더 이상 그를 도와줄 여력이 없었으므로 결코 이타적일 수 없었다. 동기들은 차츰 그와 엮이면 피곤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를 점점 멀리하기 시작했다.
인턴이 실수할 때마다 대놓고 욕을 하는 모과의 레지던트도 그를 의식하여 그에게만은 욕하지 않았다. 병원의 야만이 그만은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그때마다 그는 말이 아닌 모멸의 시선을 받았으므로 야만은 감춰져 있을 뿐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의 주치의였던 소아 신경과 교수 C는 넌 수술만 빼고 다 할 수 있을 거라 말했었지만, 결코 이런 것들은 말해주지 않았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육체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인턴 생활도 2/3가 지나가고 원서를 넣을 때가 됐다. 그는 언제나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재활의학과에 지원할 수 없었다. 그의 선발을 막은 건 병원도 교수도 아니었다. 그건 의외로 학생 때 그에게 잘해주던 그의 선배들, 즉 재활의학과 레지던트들이었다. 교수들은 존스홉킨스 이승복 교수를 예로 들며 그를 선발하면 의국도 돋보일 거라 생각하고 그의 선발을 바랐다. 하지만 실제로 바쁘게 일을 하는 레지던트들은 달랐다. 레지던트들은 그가 의국에 들어옴으로써 그가 하지 못하는 여러 일들을 자신들이 떠맡아야 함을 예상했고, 때문에 교수들의 결정에 반발했다. 교수들과 레지던트들의 의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거기에다 재활의학과는 하겠다면 그냥 시켜주는 비인기과가 아니었다. 그 말고도 재활의학과를 바라는 인턴들은 많았으므로 더욱 그의 입장은 곤란해졌다.
그는 처음으로 포기란 걸 했다.
그는 재활의학과에 원서를 넣지 않았다. 대신 모교 생리학 교실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생리학 교실에 들어가 근무력증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꿈의 한 조각이 빠져나간 그는 비틀거렸지만 그제야 비로소 야만의 정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편안해졌다. 그는 한 번 실패했을 뿐이었고 결코 꿈을 버리지 않았다. 무력한 근육에 힘을 들여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 100% 픽션, 가슴으로 미칠듯한 응원을 보냅니다.
오늘은 희망이 있는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연하게 후배님의 페북 링크를 보다가, 재미난 동영상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미리 결론을 말씀드리면, 사고로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분들에게 아주 희망적인 소식이라고 하겠습니다.
공장 기계에 눌려서, 혹은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로 팔을 잃은 소식을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실제 제 주변에는 이런 분을 아직 개인적으로 알고 있지는 않지만, 동기들이나 정형외과에 간 친구들, 그리고 정신과 선생님들까지, 이런 환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경우를 종종 들었습니다.
사지를 포함한 신체 일부가 절단된 환자들은 사고 당시의 상황 뿐만 아니라, 수술 전, 수술 후, 그리고 한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동안, 생각보다 많은 고통을 안고 살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컨대, 한쪽 팔이 절단된 환자의 경우에는, 수술 후 한동안, 그림자 통증 혹은 환상 통증(phantom pain - 팬텀 페인)이라는 것을 겪는데, 이게 일부의 경우에는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야할 정도로 상당히 고통스럽습니다.
이 펜텀 페인은, 기본적으로 팔이 없어졌다는 것을 신경계가 인지를 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통증 신호를 보내는 신체의 부조화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데요. 이런 고통은 결과적으로 환자를 힘들게 만드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통증 자체가 무언가 조치를 취하라고 만든 인체의 신호 현상인데, 팔이 잘려나갔기 때문에, 더이상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면, 이런 신경계의 신호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잘려나간 신체의 말단 부위에 아직 신경계가 살아있고, 이를 이용한 인공팔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를 이용한 것이, brain–computer interface (BCI), mind-machine interface (MMI), direct neural interface (DNI), brain–machine interface (BMI) 로 불리는 기술들입니다. 이 경우에는 뇌에 직접적으로 무언가 조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direct neural interface (DNI) 라고 불러야 하겠지요.
즉, 신경계가 보내는 신호를 인지하고, 그 인지된 신호를 분석하여, 기계 혹은 로봇을 움직이는 모든 과정이 바로 brain–computer interface (BCI)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이론적으로는 이 부분이 너무나도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이 부분은 아주 까다롭습니다. 기본적으로 절단된 부분 혹은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 자체가 아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잡음(Noise)도 굉장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신호를 증폭시키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신호 분별력, 의도 파악 등, 생각보다 고려할 사항이 많고, 그 사항을 하나하나 개선시키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단 한번에 진행할 수도 없으며, 개인별로 신호가 다르기 때문에, 이 과정은 기본적으로 한 명의 환자와 대략 2-3년 정도의 훈련을 하면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토대로 분석하고, 다시 신호를 개선 시키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머신 러닝 기술과 컴퓨팅 능력, 신호를 증폭시키고, 이를 해석하는 알고리즘의 발달. 전폭적인 연구비 지원과 로보틱스의 발전이 결과적으로 현재와 같은 발달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이 동영상은 세계 최고의 의대와 병원 연구팀이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 팀에서 만든 영상인데, 처음부터 대략 5분간 이 기술이 어떻게 환자에게 적용되어 왔고, 어떤 가능성이 있으며, 환자가 어떻게 로봇을 생각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이 비디오가 거의 1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조금 더 개선되었겠죠.
아무쪼록, 이런 기술은 공학의 발전 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응용이 합쳐져야 가능한 것이지요. 공학의 발전, 의학의 발전, 그리고 자연과학의 발전. 저 위에 있는 행정가 공무원들이 자주 이야기처럼, 이분법적으로 분야를 나눌 시기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기술자체는 임상, 의학, 공학, 신경 과학 모든 분야가 총체적으로 망라된 기술이고, 이런 관점으로 접근해야만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수 있고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A Colorado man made history at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Applied Physics Laboratory (APL) this summer when he became the first bilateral shoulder-level
이번에, 기회가 되어서 책정리를 했는데, 다양한 책들이 나왔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책들은 의대 다닐 때 교과서들이구요. 정리를 하면서, "교과서에 대한 글"을 하나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글을 포스팅합니다. 추가로 최근 책에 대한 문의들이 많이 와서 겸사 겸사 글을 써 봅니다. ^^ 쓰고 나니깐, 글에 좀 기네요. 페북에서는 글이 길면, 반응이 좋거나, 아니면 그냥 클릭만 하고 안 읽는 경우가 많던데.. 걱정입니다.
이 글은 대부분의 의대생에게 도움이 되지만, 일부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교과서를 통해서 학습을 하는 모든 자연과학도 학생들에게도 도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이 글은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 것이고, 후배들이 책에 관해서 물어올 때 마다 대답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 조교 생활을 하면서 기초 의학에 남아 있다 보니, 주변 동기들 혹은 후배들이 책에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 많이 물어 보았기에, 그 내용도 어느 정도 첨가합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책이 주는 향기를 특히 좋아해서, 정말 많은 책을 사거나 모았습니다. ^^ 현재도 그러하구요. 1년에 이틀정도는 날을 잡아서 하루 종일 책을 사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교과서를 구입하여서 가지고 있었고, 항상 이사를 갈 때마다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아저씨들이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책을 막 반대로 꼽으세요...) 하지만,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그러하지 않죠. 일부 책만 구입하는데, 이 책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죠.
이번 포스팅은 주로 의대 교과서에 대한 글이 될 듯 합니다. 아울러 최근에 책들 일부를 판매 혹은 후배들에게 주었는데, 그 이유는 결국 참고는 하게 되지만, 진로가 비교적 확실히 정해진(?) 현재는 생각보다 찾을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입니다. 책은 필요하신 분께 가는 순간 다시금 살아나니깐 누이좋고 매부좋죠. ^^
의대에서는 많은 책을 보게됩니다. 당장 1년 동안에 배워야 하는 과목 수부터 상당하기 때문이죠. 당연히 시간이 많이 남아서, 교과서를 읽으면 좋긴 하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대표단이 만들었거나, 교수님께서 주시는 발표 자료 등을 편집해서 메뉴얼을 만들어서, 그것을 보고 공부하게 됩니다. 저 역시 본1,2때는 교과서를 보려고 노력은 했는데,너무나도 많은 공부량과 메뉴얼 양에 치여서, 교과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유용합니다.
1. 이해의 폭을 넓혀 준다.
메뉴얼이나, 교수님 PPT 자료는 기본적으로 축약본입니다. 수업에서는 워낙 다뤄야할 내용이 많기 때문에, 앞뒤 서론이나, 그 학설이 제시된 근거 등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고, 단순히 중요한 facts를 기록하는데 급급합니다. 실제로 그 내용만을 익혀도 의사가 되는데 충분하지만, 앞 뒤 역사적 맥락과 고전적 개념을 이해해 두면, 왜 그런 내용이 등장하였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고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게 됩니다.
물론, 의대 성적과 전후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긴 합니다. 의대 공부 자체가 주어진 한계 시간 안에 중요한 사항을 최대한 많이 익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시험 공부를 하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중요 facts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야 하지만, 맥락을 알아 두면, 오래도록 기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추후에 자신이 연구를 하거나, 조금 더 깊은 학문을 대하고자 할 때 드디어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지식은 교수님이 강의 중에 설명해 주시는 지식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글을 보면서 직접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2. 체계를 잡을 수 있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교과서를 읽어 버릇하게 되면,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 학문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한 분야의 교과서는 그 분야의 대가가 나름의 편집 스토리를 가지고, 학문의 체계를 잡는 길잡이 역할을 제공하기 위해서 쓰여집니다. 내용 자체도 아주 solid evidence를 가진 부분만 다루기 때문에, 간혹 out of date가 될 수도 있지만, 학문의 체계를 잡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개인적으로 의대 공부에서 다루어지는 지식을 4년(6년) 혹은 전문의 과정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으로 모든 과정을 외울 수 없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방대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의대 공부를 할 때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 방대한 지식의 바다에서, 자신이 관심가질 시기에 다시 찾아 볼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는 Index 개념을 가지고 의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 주변 친구들만 보아도, 제가 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학부생 수준의 생화학,면역학 개념 조차도 까먹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실험을 해야할 때, 다시 공부하라고 한다면, 그 체계를 다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최소한 한번은 학문의 체계를 잡았기 때문이죠. 그 체계를 다부잡고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는 교과서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떤 한 주제를 바라볼 때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이는 결국 환자를 볼 때 조금 더 넓게 보게 되고, 추후 연구를 할 때도, 연구의 질적 측면에서 더 넓은 확장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등장할 수 있는 질문이 바로.. "교과서로 공부하는데 꼭 신판을 이용해서 공부해야 하느냐"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 개인적인 조언을 한다면, 모든 교과서들이 그렇지만 "교과서 뼈대"만큼은 비슷하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다 라고 결론 짓겠습니다. (이 포스팅을 출판사가 싫어합니다 -.-;;;;)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 혹은 교수님 수업 스타일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최신판을 구입하면 좋겠죠. 하지만, 의학책은 절대로 값이 저렴하지 않습니다. 추가로, 그 많은 책들을 모두 다 신판으로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자신이 그 학문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한다면, 자비든 연구비든 신판으로 update된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공부해야 하겠지만, 의대생 혹은 일반적인 개념을 잡기 위한 용도라면, 가격을 고려해서 굳이 최신판을 구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학생 때, 교과서는 참고용으로 구입하고, 교수님 피피티나 필기를 주로 공부하는 스타일이라서 따로 이전판이라도 무리 없이 공부가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면, 교과서가 주는 "이해도"를 우선시 한다면, 이전 판이라도 큰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학교 교수님이 교과서 하나하나를 자세히 리뷰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전판을 보는데 무리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 또한 피피티가 보통 복사실에 돌거나 교과서 파일을 구해서 주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데, 교과서를 읽으면서 이해한다는 측면에서는 조금 영향을 미치겠죠.
또 하나는 자신의 공부 정도입니다. 사실 교과서는 정말 "이해를 위해서" 필요한 겁니다. 교과서만 열심히 파고 있으면 폴(유급)하기 딱 좋죠. 근데, 이해라는 큰 틀에서는 교과서 만한게 없습니다.
의대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교과서들을 나열하면, 예컨대 이런 것들입니다. 해부학의 대장, 그레이 아나토미(Gray anatomy) 그리고 무어(Moore-정통 해부학자가 말하길)Rohen atlas, 병리학의 완결판 로빈스(Robinson 아닌 Robbins!), 신경과 린제이(Lindsay), 예과 분자생물학 더 셀(The cell), 내과 해리슨(Harrison), 약리학 가충(Katzung), 생리학 가이톤(Guyton) 등등까지, 혹시 의대를 졸업하시고 시간이 좀 지나신 분들은 추억이 돋나요? 저는 오랜만에 좀 돋았습니다. ㅎㅎㅎ
일부 책은 제가 신판이 없어서 모든 책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 경험상 판이 바뀐다 하더라도 큰 내용의 변화는 없습니다. 소소한 업데이트나, 테이블 변동은 있지만, 일부 교수님들이 교과서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기에, 내용이 그대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간혹 변한 부분에서 시험을 내실 순 있겠죠. 하지만, 이 부분은 대부분 수업 때 언급을 하게 됩니다. ^^ 물론, 임상의 경우 진단과 치료 criteria가 바뀌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최신 교과서라 하더라도 업데이트가 늦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학교와 교수님 , 본인의 공부 스타일 차이이기 때문에, 이전판을 구입해서 아주 만족할 수도(사실 가격 이득이 상당하니깐요 대체로 신판을 구입하는 비용의 절반 이하로 구판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아님 수업 중간 중간에, 약간의 차이 때문에 불만족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많이 신경쓰는 사람이라면 통크게 신판으로~ 고고싱~ 하는 것이 좋고, 저처럼 책을 좋아라 하지만, 굳이 신판이 없어도 된다면(혹은 남는 돈으로 후배들이랑 술마시러 가는??? 스타일이라면,잘못하면 책도 안 사고 술마시러 가기도 해요 ㅎㅎ), 이전판을 구입해서 공부하게 되겠죠.
저도 모든 것을 구판으로 구입한 것은 아니고, 관심있는 과목, 예컨대 면역학, 해부학 생리학은 최신판, 관심이 덜 가지만, 찾아 보고 싶은 것 병리학, 약리학 등등은 구판으로 구입했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이전 판을 사거나 가지게 된 경우 수업 들을 당시 몇 페이지 펴라 할 때, 페이지 차이가 있어서 10초 정도 딜레이된 경우는 있긴 했지만, 결국은 똑같은 그림이 앞 뒤장에 있어서 그리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즉, 내용의 큰 틀은 변화가 크지 않으나, 일부 업데이트가 더 되었는데, 최근 신지식이다 보니, 큰 흐름, 대세에는 영향이 없다는 것이지요.(물론 앞서 언급했지만, 영향을 미치는 진단 criteria가 변하는 경우는 있긴 하지만, 그건 ppt나 파워, 퍼시픽, 필기집 등 요약판 책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교과서는 굳이 안 사도 되지만, 전체적인 개념을 잡는데 필요하다는 것이죠.
끝으로, 교과서 자체는 이 질병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해를 목적으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목적을 맞추어, 연구를 하고 있는 현재에도 아주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
결론은 내리자면, 일반적인 개념에서 교과서를 공부하는 것은 어찌보면 성적이랑은 동 떨어진 방향인 경우가 많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암기를 요구하는 현재 실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인 지식의 폭을 넓히고, 연구를 생각한다면, 방학에 자신이 관심 가지는 과목 하나 정도는 교과서를 읽어가면서 교과서가 주는 참재미(?)를 느끼시는 것도 재미있는 취미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